뉴욕 지하철을 탈 때 마주치는 것들

누군가 뉴욕은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해서 매력적인 도시라고 했다. 관광객 넘치는 맨하탄 중심부를 빠져나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고즈넉한 길을 걸을 때면 그런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만들어진 시기의 미학을 뽐내는 듯한 아름다운 건물들, 가로수가 풍경의 일부가 되는 잘 정비된 보도, 여유로운 걸음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오래된 건물 사이에 막 지은 현대식 건물이 생뚱맞게 끼어 있다면 더 흥미로운 산책길이 된다. 우디 앨런의 흑백영화에나 나올 법한 뉴욕의 모습이 그나마 박제되어 있는 듯한 공간이다.
그 거리를 지나 지하철 역으로 내려오는 순간, 집에 돌아온 신데렐라처럼 뉴욕의 마법에서 깨어난다. 자랑스럽게 110년 역사를 기념하는 포스터를 붙여놓은 뉴욕 지하철 역. 110년이 지나는 동안 그리 크게 변했을 것같진 않다. 좁은 플랫폼에 어떤 포즈로 서 있든 무심코 아래를 쳐다보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고양이 만한 쥐들이 철로를 런웨이 삼아 캣워크(!)라도 하듯 위풍당당하게 지나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뭐든지 다 크다고 하던데 심지어 쥐마저 크다는 걸 직접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겠다. 스크린 도어? 지하철 도착 안내판? 에스컬레이터?(아주 큰 역에는 자주 고장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긴 하지만) 그게 뭐야? 먹는 건가? 그래도 몇 가지 장점은 있다. 일단 빠르다. 물론 연착이나 노선변경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2015년 들어 잦은 연착과 노선 변경으로 1년치 먹을 욕을 다 들어먹고 있는 뉴욕 지하철이지만. 그리고 24시간 운행된다. 대신 홈리스들이 어슬렁거리는 지하철 역에서 30분~1시간을 기다릴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뉴욕 지하철은 초보자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 교통수단이다. 하이 테크놀로지 지하철 세상에서 온 관광객들에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5년전 뉴욕에 왔을 땐 심지어 다음역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조차 들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역 이름을 보고 재빨리 내리는 ‘눈치’가 필요했다. 지하철 운전기사가 역이름을 알려주긴 하는데 심지어 뉴욕커들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발음이다. 최근에, 그러니까 2013년 즈음부터 내부 전광판도 달고 자동 안내방송도 나오는 지하철이 하나둘 늘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인지 구분하는 것도 초보자에겐 쉽지 않다. 자신이 가려는 목적지의 방향이 퀸즈 쪽인지, 브룩클린 쪽인지, 브롱크스 쪽인지도 알아놔야 혼란이 적다. 아니면 그냥 함께 타는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게 빠른 방법이다.
동쪽과 서쪽의 오래된 작은 역들은 북쪽행(업타운)과 남쪽행(다운타운) 출입구가 다르기 때문에, 만약 남쪽행 출입구로 들어왔는데 북쪽행으로 가야 한다면 다시 밖으로 나가 바른 출입구로 들어온 다음 지하철 요금을 다시 지불하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 하소연할만한 직원은 거의 상주하고 있지 않고, 있다 해도 버벅거리는 영어로 말해 봤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어깨만 으쓱할 게 뻔하다. 어렵고 불편하게 들리지만, 사실 한 가지만 알면 수월하다. 바로 ‘동서남북’을 파악하는 일이다. 출구에도 1번, 2번같은 번호는 없다. 내가 지금 도심의 어디쯤 서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 같은 건 없다. 출구 나가서 바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있다 해도, ‘이쪽이 모마’ 같은 친절한 표지판같은 건 기대하지 말라. 출구에 있는 정보라곤 ‘북서쪽, 북동쪽, 남서쪽, 남동쪽’ 정도가 전부다. 동서를 구분하는 애비뉴는 숫자가 커질수록 서쪽이고, 남북을 구분하는 스트리트는 북쪽으로 갈수록 숫자가 커진다. 예를 들어 23 스트리트 & 6번 애비뉴 역에서 내렸는데 21 스트리트 & 7번 애비뉴를 가야 한다면 남서쪽 출입구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렵다고? 당연히 어렵다! 서울에서도 엄청난 길치였던 내가 뉴욕에서 ‘동서남북’을 기억하며 길을 찾고 다닐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다. “애네는 랜드마크도 없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같은 건 출구에 표시에 놓으면 안 되나?”라는 투덜거림이 당연하지만 어쨋든 그런 일은 아직까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에 지도앱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 지하철을 중심으로 삽질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이 없고 본인이 생각해도 심각한 길치라면 아예 나침반을 챙겨오는 게 낫다. 어디서든 몇 십분 동안 길을 헤맬 게 분명하니 운동화 착용도 필수다.
지하철 역도 (온갖 안내로 가득찬 지하철만 타왔던 한국인에게는) 어리둥절하지만 지하철 안은 더더욱 이상한 나라다. 한국에서라면 남을 의식해서 감히 할 수 없는 무례하고 기괴한 행동들이 라이브 쇼처럼 펼쳐진다. 나도 한국에서 1호선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각종 노선을 타며 웬만큼 이상한 사람은 다 봤다고 자부했던 사람이지만, 뉴욕 지하철은 나의 그 모든 경험을 지하철 초보자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 자, 일단 출근 시간. 앞에 앉은 여자가 풀메이크업을 하느라 바쁘다. 부끄러워하며 재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수준의 화장이 아니다. 속눈썹 뷰러까지 갖추고 제대로 마스카라를 한다. ‘비포 & 애프터’의 변화과정을 생중계하는 그녀는 유튜브 방송이라면 ‘좋아요’를 막 눌러주고 싶은 기술의 보유자다. 옆에 앉은 남자들은 축구의 골 영상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지 볼륨을 엄청나게 올려놓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대각선 위치의 아이도 상황은 비슷하다. 신발을 신고 좌석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엄마가 태블릿을 건넸더니 이번에 볼륨을 키우고 게임 삼매경이다. 지하철에서 전화가 안되서 다행이다. 여기에 중국어 억양으로 전화까지 하는 아저씨가 끼어들면 헤드폰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소음의 천국이 된다. 전화가 안 되면, 어떤 이들은 마주 보고 앉아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왜 옆에 안 앉고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냐고 묻지 마라.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은 1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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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봉은 안전을 위한 것이지 최신 (댄스) 루틴을 위한 게 아닙니다 – 주의를 끌지 말고 봉을 잡으시오. 지하철은 쇼타임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는 최신 안내문 – 뉴욕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경고문을 볼 수 있을까?

오후가 되면 ‘서브웨이즈 갓 탤런트’가 시작된다. 기타를 치며 얌전히 포크송을 부르는 분은 양반이다.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쓰고 화음을 맞추는 아미고 밴드도 들어줄 만하다. 반도네온을 켜는 아저씨도 있고, 심지어 자기 키만한 하프를 옮기며 연주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힙스터 흑형들이 가끔 80년대를 그리워하며 랩이 울려퍼지는 붐박스를 들고 지하철을 활보할 때도 있다. 몇 년 새 가장 반응이 좋은 퍼포머는 지하철 봉을 잡고 과격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청년들이다. 봉을 잡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오래 버티는 게 하이라이트. 개인 능력에 따라 몇 개의 덤블링과 힙합 댄스 루틴이 더해진다. 처음 볼 때는 그저 신기해서 콜라라도 사먹으라는 마음으로 5달러 지페를 주곤 했지만 이젠 너무 많이 마주쳐서인지 그마저 심드렁하다. 비단 나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며칠 전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던 청년들은 승객들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자 욕을 하며 지하철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애들아, 지하철 브레이크 댄스는 한물 갔어.”

그외 여러가지 등등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샌드위치나 먹을 것 좀 나눠 달라는 사람이 있고, 임신했는데 실직을 했다며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고, 뉴욕에서 살기 너무 힘들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차비 좀 보태달라는 사람도 있다. 대학교 학기가 시작되면 교재를 사야 한다면서 스낵바 박스를 들고 개당 1달러에 파는 아이들도 등장한다. 1명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 수가 많으면 ‘조직’을 의심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이들은 무조건 불쌍한 모습으로 동정을 바라진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을 최대한 조리있게 설명하며 승객들은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승객들은 순순히 지갑을 연다.

여러가지 사람들 중에서 최악은 지하철 안에서 무언가를 먹는 이들이다. 서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빵조차 마음대로 꺼내서 먹지 못했다. 배고프면 빵 정도는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또한 남부끄러운 행동이었나 보다. 하지만 뉴욕에선 절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다. 과자와 빵은 양반이다. 피자 한 판이 담긴 박스를 열어서 우적우적 먹는 사람 앞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체할지 모르니 가방에서 생수라도 꺼내 건네줘야 할까? 어제는 옆에 앉은 소녀들이 치킨과 프렌치 프라이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손으로 쪽쪽 빨아 먹으며 치킨 파티를 벌였다. 중국 분들은 만두도 먹고, 국수도 먹고, 스프도 먹는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무언가를 저렇게 열정적으로 먹는 분들이 존경스럽기까지한 상황이다. 누군가 말을 해야 한다고? 몇년 전 테이크 아웃 스파게티를 일회용 포크에 말아 열심히 먹는 소녀에게 항의를 하는 할머니를 몰래 찍은 유튜브 동영상이 화제가 됐었다. ‘심하다’는 마음으로 댓글창을 열었는데 대개는 그 할머니를 욕하고 있었다. 타인의 식사를 방해하는 건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아시아와는 좀 다른 룰이었다. 시끄러우니 핸드폰 볼륨을 줄여달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허기진 타인을 먹지 말라고 말릴 수는 없다.

3년 만에 서울을 방문해 지하철을 탔다. 어두침침한 뉴욕 지하철에 비하면 정말 환하고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이었다. 원시인 지하철에서 갑자기 2020년쯤으로 이동한 기분이었다. 과도하게 환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고, 사방에서 들리는 ‘~하세요, ~하지 마세요’ 라는 통제 중심 안내방송이 (몹시) 거슬리긴 했으나 이게 바로 선진국의 지하철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지하철에 앉아 전화와 와이파이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이번주 일요일에 티켓 가격이 2.75달러로 오르는 뉴욕 지하철의 장점을 생각해 보자.(그렇다. 변화하는 것도 없으면서 가격만 올리는 지하철에 화가 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일말의 불편함은 인간을 독립적으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개인의 승객이 숙지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주말마다 지하철이 제대로 다니고 있는지, 노선변경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점점 습관이 되어 간다. 지하철을 타러 나갔는데 지하철이 안 다닌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언제든 걸을 준비를 할 수밖에. 혹은 몇 배의 비용을 감수하고 택시를 탈 수밖에.
지하철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지하철 역에서 발견되곤 한다. 지하철 곳곳에서 마주치는 예술 작품들과 듣기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들이 지친 도시 생활에 예상치 못한 휴식을 안겨준다. 온전히 자동화된 지하철 시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뉴욕. 아직은 어리숙한 기계와 엔지니어를 욕할 수 있어 ‘인간적’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너의 불편함 때문에 엄청 독립적인 승객이 되었어. 고마워, 뉴욕 지하철.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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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런 분을 본 적은 없다. -_-

 

20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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