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과 승무원

항공사 회장을 아빠로 둔 어떤 분이 어쩌다가 그 회사의 부회장이 되어, 어쩌다가 그 비행기를 탔고, 어쩌다가 마카다미아를 가져다달라고 했는데, 그 마카다미아는 봉지째로 건내졌고, ‘우리 항공기 서비스는 이렇지 않아’라고 굳게 믿었던 그 분은 막 뜨려던 비행기를 자신의 권한으로 후진시켜 사무장을 떨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명 ‘땅콩 리턴’의 전모를 읽은 사람들은 뭐라도 비난을 하며 서로의 비난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낸다. 직원들을 격려하진 못할망정 작은 흠이라도 잡아내려고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보스의 모습이 겹쳐지지 않는가. 자신의 권력을 총동원해 일개 직원을 해꼬지하는 그 교활함에 욕을 던지면서도 한편으로 내 주변의 못된 상사들 모습을 보는 것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혹은 우리 상사는 저 정도까지 미친xx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할까.
모멸을 당한 승무원들의 마음은 어땟을까 상상해본다. 이륙을 앞두고 안전점검을 위해 긴장하고 있었을 그들. 직업정신으로 무장하고 움직이고 있던 그들 틈으로 한 진상 승객이 끼어들어 ‘왜 날 제대로 안 챙겨주냐’고 징징대며 어리광 피우는 상황. 앞으로 기내에 진상 재벌3세 베이비시팅팀이라도 배치해야 하는 것인가.
이 진상 땅콩 어린이만 문제인 건 아니다. 어떤 승객은 비행기를 궁궐로 착각했는지 탑승하자마자 임금님 행세를 하며 라면수라상을 대령하라 하지 않았는가.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갑부 진상들뿐 아니라 승무원을 ‘아가씨’라 부르는 아저씨와 아줌마도 떳떳하지 않다. 적어도 ‘승무원님’이라고 부르면 안되는 걸까? 땅콩과 마카다미아 논란보다도 화제가 되지 않는 ‘충격으로 병가받아 휴직한 사무장’의 권리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해외 나가는 비행기를 처음 탔던 건 2000년이 넘어서였다.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 한번 제대로 못가본 나에게 비행기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모든 승무원들은 친절했고 무엇보다 승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보였다. 밥도 나오고 술도 나오고 땅콩도 나왔다.(마카다미아 넛은 한번도 구경해보지 못했다) 비행기만 타면 어린아이처럼 창밖을 보며 신기해했던 나였으나 비행 출장 및 여행 10년차가 넘어가니 각 비행기 서비스를 비교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 비교의 대상은 대개는 승무원들이었다. 입사하기 위해 몸무게 조절까지 해야하는 한국의 승무원은 그 마른 몸으로 열심히 기내식 카트 및 면세품 판매 카트를 날랐다. 비행기 승무원은 다 이렇게 과도하게 친절하고 마냥 웃는구나 했다가 미국과 유럽 항공을 타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프랑스 영화제를 다녀올 때 탔던 에어 프랑스 항공. 이륙하자마자 기내식 업체가 파업을 했다며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안내방송을 했다. 10시간 넘게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밥을 못 먹으면 무엇을 먹나? 급하게 어디선가 공수한 샌드위치와 원하는 사람 와서 먹으라는 컵라면이 제공됐다. 더군다나 컵라면은 셀프였다. 그많던 승무원들은 밥을 찾아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인지 드문드문 기내를 오갔다. 제대로 된 식사가 제공되지 않았건만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는 엄청 욕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없는듯했다. 아니면 내가 프랑스어를 못 알아들어서인가?
독일과 브라질 항공 승무원들은 기내식을 던지는 수준의 서비스를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웃지 않았다. 막 탑승하는 승객을 맞이할 때 짓는 미소를 제외하곤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다. 기내 면세품도 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은 바빠보였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기내의 책임자들이였고 테러 위협 정도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대개는 그들의 손바닥 안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어린아이 챙기듯 승객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할일은 승객을 접대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서비스를 하고 싶다면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르는 것이다. 억지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최고의 경험은 한국가는 길에 미국내 환승을 위해 탔던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 벌어졌다. 처음 타보는 비행사 항공기였는데 국내선이라 기내 환경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 국내선에선 비행 시간이 5시간을 넘어간다한들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승객이 알아서 탑승 전에 먹을 걸 공항에서 사오든가(반입이 된다) 기내에서 파는 차디찬 샌드위치를 사 먹어야 한다. 대개는 비싸고 맛없는 기내 샌드위치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사들고 탑승해서 대충 한끼를 때운다. 그들에게 있어 비행기는 최단 시간을 위해 선택하는 수단일 뿐이지, 갑작스레 ‘갑’으로 계급 상승을 시켜주는 환상의 공간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비행 시간은 점심 때였다. 내 뒤에 앉아 있던 승객은 승무원을 불러 샌드위치를 주문하려 했다. 그러나 승무원은 샌드위치가 동났다고 말했다. 그 승객은 “밥도 안 주면서 승객수만큼 샌드위치를 가지고 타야 하는 게 아니냐. 샌드위치가 품절되서 비행기 내에서 밥도 못 먹는다는 게 말이되냐”며 엄청나게 화를 냈다. 미국인들이 사람 많은 곳에서 그다지 크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컸다. 국적이 어떠하든 누구나 배가 고프면 민감해지는 법.
승객의 고함 소리에 승무원이 한술 더 떴다.(무릎은 꿇지 않는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회사가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러더니 아예 그 승객 옆에 앉아 대화판을 열었다. “샌드위치가 많이 남는다고 승객수보다 훨씬 적게 실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죠. 이런 건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승객분이 제발 회사에 불만 좀 표해주세요. 제발이요.”
“아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요. 승객이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할 거요!”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그 샌드위치에는 우리 먹을 분량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회사가 돈 아낀다고 승무원들 비행 중 밥도 안 줘요. 각자 알아서 싸오든가 사서 먹으라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나요? 이 담요도 보라고요.(담요를 들고 있었다) 원래 담요도 기본으로 지급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담요도 안 나눠주고 승객이 요청해야 가져다 준다고요. 우리 일이 더 많아진 셈이에요. 샌드위치 무게 때문에 기름이 더 많이 든다고 하는데 그깟 샌드위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말문 터진 승무원의 말에 빠져든 승객은 자신의 허기를 잠시 잃었는지 오히려 승무원을 위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둘은 잠시동안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최악의 서비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지는 승무원의 말.
“배고프시면 저희가 땅콩이라도 좀 더 드릴께요.”
그 승무원으로서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거기까지였다.
어쩌면 그녀는 가장 연장자 승무원으로서 고객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제대로 꿰는 노련함을 보여줬는지도 모른다. 그 속내야 어찌하든 이 상황은 나에게 있어 굉장한 문화충격이었다. 승무원이 회사에 대해 투덜거린다는 것도 그랬지만, 그보다 먼저 승무원이 승객과 앉아서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나로선 바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승무원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승객은 서비스를 받는 입장 아니었나? 승무원과 승객 사이의 대화란(그걸 대화라고 한다면) “치킨이요? 소고기요?”하면 “소고기요” 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던가.
이런 미국 비행기를 타면서 얻은 깨달음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가 ‘갑을’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체로 어디든 그러하다. 내가 돈을 내고 내가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방글방글 미소와 콧소리를 기대하긴 힘들다. 한국이 10이라 치면 3정도의 친절함일까. 비록 고객용 미소는 없고 무뚝뚝하기 그지없지만 진심어린 안부인사와 감사를 보낸다면 그들도 미소로 화답한다. 말이 잘 풀리면 그 이상의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어느 쪽이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문화적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무원이란 이유로 직업적 책임 이상의 요구에 마땅히 응해야하며 과도한 친절을 베풀며 감정 착취를 당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에도 당신이 비행기를 타면 갑자기 무한 갑질을 할 수 있다고 써있지 않다. 비행기는 장거리용 교통수단일 뿐이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갈 때마다 승무원은 땅콩을 주면서 늘 같은 말을 한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으시면 프레첼을 드릴께요.”
“아뇨, 땅콩 주세요”
땅콩을 봉지째 받으면서 해야하는 말도 늘 정해져 있다.
‘접시에 담아와라, 매뉴얼 모르냐’는 말이 아니라,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정답이다.
이 상황에선 누구도 갑이 아니고 누구도 을이 아니며 무언가를 받으면 감사를 표시하는 게 소통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콩 리턴’과 관련해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승무원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기우일까? 기우이길 바란다.
앞으로 비행기에서 작은 땅콩 봉지를 받아들 때마다 어떤 기분이 될까? 쓴 웃음이 나오겠지.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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