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소비생활

90년대 걸작 영화 중 하나인 <파이트 클럽> 초반부엔 단정한 회사원인 주인공이 머릿속으로 이케아(미국발음은‘아이키아’이지만) 카탈로그 상품들을 시뮬레이션 하며 가구를 배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남자의 야수성 부활을위해 노력하는 영화에서 이케아는 집을 상징하며 남자는 그 안에서 가구 배치에 전전긍긍하는 소비사회의 인간으로 길들여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정한 양복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집까지 단정하다. 이것이 바로 모던 소비 라이프. 웰컴 투 모던 월드다.


<파이트 클럽>예고편. 약 18초경 이케아 카탈로그가 삶에 오버랩되면서 주인공은 ‘나를 한 인간으로 정의해줄 식탁세트’를 고민한다.

<500일의 썸머>에서 이케아는 데이트 장소가 된다. 집처럼 꾸며진 쇼룸을 오가며 주인공들은 마치 연극을 하듯집에 있는 듯한 흉내를 낸다. 한 침대에 같이 누워 꺄르르 웃어대며 지금과 같은 미래를 꿈꿔보지만 알 수 없다.시즌이 바뀌고 새상품이 나오면 이케아의 쇼룸은 또 변할 것이고 그들이 누웠던 침대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사랑의 기억도 사랑이 머물렀던 공간도 함께 사라진다. 그들에게 이케아는 집이 될 수 없는 공간, 잠시나마 정착을 꿈꿀 수 있는 연극무대같은 곳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이케아 매장에 갔다가 결혼생활을 장난스럽게 시뮬레이션해본다.(고백하자면 처음에 이케아 매장가서 따라해봤다)

미국에 왔을 때, 내가 이케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이 두 가지였다. 단순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위한 가구점이자, 미래의 집에 대한 이미지를 꿈꾸게 만드는 장소가 이케아였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부터 쇼핑 사이트를뒤져 클리판 소파나 소소한 주방용품들을 구입해 쓰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이케아는 가장 적은 돈으로 내 모던한취향을 표현하는 일종의 상징용 브랜드였다.(다른말로 ‘허세’라 한다) 희소한 수입품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던 나의 앞에 등장한 미국식 이케아 매장은 거대한 왕국같았다. 그 첫경험은 상당히 강렬했다. 한국의 일반 마트보다 더 넓은 매장은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이케아는 일종의가구 테마 파크였다. 파란색 건물에 박힌 ‘IKEA’ 로고를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렜다.

미국 주거양식에 맞춰 각종 평수대로 가구를 배치해놓은 쇼룸들을 ‘우리집도 이랬으면’하는 소망을 안겼다. 쇼룸소파에 안거나 침대에 누워서 미래의 나의 집을 그려보는 게 즐거웠다. 이 모든 가구들을 사서 집에 구겨 넣으면가능할 것도 같았다. 쇼룸을 돌면서 곳곳에 있는 연필과 메모지를 활용해 사고 싶은 물건들의 번호를 적어 내려갔다. 쇼룸이 끝나는 곳엔 식당이 있었다. 둘러 보느라 1~2시간이 훌쩍 지나갔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이름도이국적인 ‘스웨디시 미트볼’을 6달러에 먹은 후 쇼룸에서 본 물건들이 쌓여있는 ‘마켓플레이스’로 내려갔다.  카트가 놓여있는 입구 쪽에는 부피가 적은 주방용품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커튼, 쿠션, 침구 커버 등의 패브릭과 정리용품, 욕실 용품을 지나면 조명과 액자, 화분 매장으로 이어졌다. 아직 사야 할 가구는 담지도 못했는데 카트에 담긴 물건들이 많다. 이 모든 인테리어 소품들을 지나자 부피가 큰 가구들이 쌓여있는 창고형 매장이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들었다. 내가 뭘 사려고 왔더라?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할 거야’라고 담았던 카트의 물건들을 빼야 할 시간이다. 이불커버, 스탠드, 그림 액자, 정리함 등을 빼고 나니 식탁매트나 건전지 등 싼 물건들만 남았다. 계산을 하고 구매한 물건들을 자동차에 싣고 들어와 집에 돌아와 이케아 가구를 낑낑대며 조립하고 나서 깨달았다. 우리집이 이케아 쇼룸처럼 멋져지려면 그 곳의 이케아 제품들을 모두 갖춰놔야 한다는 것을. 앞서 말한 <파이트 클럽> 오프닝 장면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몇 개의 자질구레한 물건들로는 이케아 카탈로그 속 멋진공간으로 변신할 수 없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완전한 공간이었던 쇼룸이 마켓플레이스의 개별 상품으로 해체되고 소비자는 그 복도를 지나며 자신의 집구조 대신 쇼룸의 기억을 환기하며 개별 상품들을 하나하나 고른다. 자신의 집 구조를 고민하며 무엇을 살지 말지 타협을 해봤자 이케아의 쇼룸이 우리집으로 바뀌진 않는다.

시간이 흘러 미국 생활의 일부가 된 이케아는 더 이상 환상의 공간이 아니다. 필요한 가구가 있을 때 비용을 크게고민하지 않고 쉽게 가서 필요한 것을 사올 수 있는 편리한 가구매장에 가깝다. 맛없는 미트볼은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고, 익숙한 쇼룸에선 필요한 물건의 상태를 확인한 후 바로 마켓플레이스로내려가 물건을 산다. 미국에선 이케아가 비싼 가구점이 아니다. 1~2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세입자들이 많은 뉴욕에선 이사할 때마다 버리는 이케아 가구들이 넘쳐난다. 싼 가격에 사서 필요한 만큼 사용한 다음, 집이 바뀌면그 집 사이즈에 맞춰 또 새로운 가구나 중고 가구를 구하러 다녀야 한다. 이케아는 신상품보다 스테디셀러가 많은편이라서 몇 번 드나들다 보면 그 곳에 어떤 가구들이 있는지 파악이 된다. 어느새 카탈로그를 뒤적이지 않아도머릿속이 이미 카탈로그화되었다. 무언가가 필요할 때 ‘이케아에서 이걸 사면 되겠다’고 가늠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가구점들도 있지만 이케아는 언제나 첫 번째 옵션이 된다. 가격이 이케아의 몇 배인 가구점을 갈 정도의돈을 벌지 못한다면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이케아는 ‘행복’이 아니라 ‘실용’을 위해 필요한 가구점이다. 가격대비품질이 좋다고 소문난 제품들을 방문하는 친구집마다 발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소비에 질린 이들은 이케아 가구를 변형해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는 과정을 공유하곤 한다.(www.ikeahackers.net을 들어가보라) 너무나 단순해서 사용자가 창의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꿀수 있다는 게 이케아 가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적은 생활비로 현대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이 이케아에 있다. 이케아를 가구계의 ‘유니클로’ 혹은 ‘다이소’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야 ‘스웨덴’이라는 점이 이국적 매력을증대시킬지 몰라도 미국에선 ‘스웨덴’이고 뭐고 상관 없다. 어차피 대부분은 ‘메이드 인 차이나’이며 서민가구로 가득한 우리집에 놓이는 순간 원산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미국의 주거 환경과 이케아 중 나의 현재 라이프스타일(이걸 ‘스타일’이라 부를 수 있다면)에 어느 쪽이 더 영향을미치고 있는지 판단하긴 힘들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파이트 클럽>의 오프닝 장면이 내 생활이 되었음을. 가구 배치와 인테리어를 생각하면서 머릿속엔 자동적으로 이케아 카탈로그가 펼쳐진다. ‘어떤 가구가 나란 인간을 최적으로 정의해줄까’가 화두가 된다. 한가지 옵션이 더 따라붙는다.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타협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진’ 가구를 찾아야만 한다. 이케아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나는 조립을 끝낸 후 생각보다 초라한 가구를 보며 ‘내 자신을 정의해주는 가구’가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깨닫는다. 저렴한 상품이 나를 정의해주리라 기대했던 게 잘못된 바람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런 허영스런 기대는 되도록 줄이고 실용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상처를 덜 받는 소비라는 걸 알게된다. ‘가격대비 이 정도 품질과 디자인이면 나쁘지 않다’가 소비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건 나는 이제 이케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이케아의 싼 가구들 없이는 내 공간도 없을 테니까.

p.s  그래도 나는 이케아를 좋아한다. 나중에 이케아에서 사두면 좋은 상품들 리스트를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대량 생산 제품을 구매에 대한 올바름 여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생산자를 알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제품들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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