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뉴욕의 기사식당, 할랄 푸드 카트

금요일 3시. 뉴욕현대미술관(MOMA, 이하 모마) 옆으로 세계 곳곳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공짜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다. 뉴욕의 대형 뮤지엄과 갤러리들은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에 무료 입장이나 기부 입장 정책을 실시한다. 뉴욕현대미술관은 금요일 4시부터 공짜다. 알뜰한 관광객들은 25달러의 입장료를 내는 대신 한두 시간 정도를 희생하며 돈을 아낀다. 4시에 입장하려면 늦어도 3시엔 이 줄서기에 합류해야 한다.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구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지구 곳곳의 언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작품 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을 왔나 싶은 와중에, 이들이 모두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원형의 은박 용기에 담긴 노란 밥이 보인다. 대체 저건 뭐지? ‘서양인 주식=빵’으로 입력된 대뇌 회로가 오작동한다.

그 순간, 건너편에서 낯설지만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온다. 지금은 모마의 줄서기 위치가 건물 북쪽(54 St)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남서쪽(53 St)으로 줄이 형성됐고 그 건너편에는 그 구역의 직장인 점심을 책임지는 노점이 두 곳 있었다. ‘할랄 푸드 Halal Food’를 파는 이런 노점을 지칭하는 일상 용어는 ‘할랄 카트 Halal Cart’다. 모마에서 서쪽으로 대각선 맞은 편에는 한때 할랄 푸드 1위였던 ‘뉴욕 베스트 할랄 카드 New York Best Halal Cart’가 있고, 모마 맞은 편에는 현재 할랄 푸드 인기 1순위인 ‘할랄 가이즈 Halal Guys’가 있었다. 때문에 이 카트 옆으로도 모마 행렬 못지 않은 긴 줄이 수시로 만들어진다. 점심 때가 되면 배고픈 직장인과 뉴욕 대표 길거리 음식인 할랄 푸드 첫 시식을 앞두고 흥분하는 관광객이 뒤섞인다.

나도 모마 앞에서 줄을 서며 할랄 푸드와 첫 인연을 맺었다. 배도 고프던 차에 남들 먹는 게 맛있어 보여 할랄 푸드를 사러 갔다. 몇 십분 줄을 선 끝에 손에 쥔 것은 닭고기와 양고기를 볶은밥 위에 토핑한 ‘콤보 라이스 Combo Rice’와 양고기를 넣은 피타빵 Pita 샌드위치 ‘램 자이로 Lamb Gyro’였다. 콤보 라이스 위에 뿌려진 빨간색 핫소스와 흰색 요거트 소스 비슷한 것을 비벼 먹으니, 난생 처음 경험하는, 기름진 데도 불구하고 자꾸 먹고 싶은 맛이 만들어졌다. 오래 익혀 부드러운 고기에 매운맛과 짠맛이 균형 있게 어우러지고, 요거트 소스의 미세한 신맛이 느끼함을 막았다. 양고기 샌드위치인 자이로는 콤보 플래터보다 기름기가 덜하지만 구운 피타빵의 풍미가 기름맛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 세트가 다 합해서 10달러가 안 된다니! 게다가 할랄 푸드로 배를 채우고 나면 장시간 동안 모마 안을 돌아다녀도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남은 음식은 할랄 카트를 주도면밀하게 응시하고 있는 비둘기들의 먹이가 된다. 할랄 카트 주변을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비둘기들을 보고 있으면 스트리트 푸드가 뉴욕 생명을 여럿 책임진다는 우스운 생각이 든다.
뉴욕 비둘기도 중독되어버린 뉴욕식 할랄 푸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슬람 문화에서는 코란의 지도하에 먹거리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할랄’이라 부른다. 엄격한 율법에 따라 청결하고 안전하게 준비되었기 때문에 ‘할랄’이 표시되어 있으면 믿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여겨진다. 스트리트 푸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신뢰하며 먹는 이유다. 대표 메뉴는 긴 쌀에 강황과 버터(혹은 마가린)을 넣고 볶은 밥 위에, 각종 스파이스와 함께 볶은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를 얹고 핫소스와 화이트 소스를 뿌려 먹는 ‘오버 더 라이스 플래터’와 구운 피타 빵에 볶은 고기, 토마토, 양상추를 넣고 핫소스와 화이트 소스를 더하는 샌드위치 ‘자이로’다. 채식주의자라면 병아리콩을 빚어 만든 튀김인 ‘팔라펠 Falafel’로 속을 채운 팔라펠 자이로 샌드위치를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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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이민자 벤더들이 퍼뜨린 그리스 스타일 종이컵은 뉴욕을 상징하는 컵이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다가 이슬람 푸드가 뉴욕 스트리트 푸드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나만 이런 게 궁금한 걸까?
뉴욕의 스트리트 음식은 이민자의 이주 흐름과 거의 일치한다. 뉴욕 거리에 할랄 푸드가 등장한 건 1990년대. 길거리 음식 판매상을 뜻하는 ‘벤더 Vendor’가 합법화 되었던 1930년대만 해도 주요 판매상들은 유럽계 유대인이었고 이들은 핫도그와 프렛첼을 팔았다.

얼마 후 몰려온 그리스 이민자들이 이 사업을 이어받아 양념한 고기 구이 ‘수블라키 Suvulaki’와 통째로 익힌 고기를 저며서 먹는 ‘케밥 Kebab’을 뉴욕커들에게 소개했다.

이후 패권은 이집트와 파키스탄에서 온 이슬람계 이민자들에게 넘어갔다. 이들은 인기 많던 그리스식 고기 구이에 중동식 관습과 요리법을 접목해 뉴욕식 ‘할랄 푸드’를 만들어냈다. 90년대에 시작된 할랄 푸드 카트 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세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전. 중동 분들이 팔고 있는 ‘오버 더 라이스’나 ‘자이로’가 정확한 중동 음식이라 할 수 없다. 자이로 혹은 기로스라 불리는 샌드위치는 이전 그리스 판매자로부터 내려온 것이고, 실상 중동식 피타 샌드위치는 영화 <어벤져스> 1편의 숨은 장면에서 멤버들이 먹었던 ‘슈와마 Shawama’라 불린다. ‘오버 더 라이스’의 원형도 중동보다는 그리스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스처럼 갈아서 빚은 고기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고기를 조각내서 볶는다는 점만 다르다. 노란색 밥에 볶은 고기를 넣고 그 위에 화이트 소스를 뿌린다. 이 소스는 한국의 잘 나가는 떡볶이집 소스만큼 비밀에 싸여 있다. 대개는 그리스의 요거트 소스인 타지키 Tzatziki 소스를 기반으로 사우어 크림, 마요네즈, 올리브 오일 등 여러 재료가 합쳐지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와 중동 요리가 합쳐져 완성된 할랄 푸드는 뉴욕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뉴욕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스트리트 푸드의 주요 고객 중 하나는 값싸고 양 많은 패스트푸드를 원하는 택시 운전사들이고 스트리트 푸드 메뉴 비율은 택시 운전수의 국적 비율에 비례한다. 현재 운수업의 다수를 점하는 분들은 이집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이며 이들은 할랄 푸드 카트의 든든한 고객들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도 싸고, 양 많고, 어느 정도 맛도 있는 밥을 먹으려면 기사 식당에 가곤 했다. 매일 밖에서 밥을 먹는 택시 운전사들의 입맛이 은근히 까다롭기 때문에 주변에 택시가 잔뜩 주차되어 있는 식당이라면 믿을 만하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다면 택시 운전사들이 사랑하는 할랄 카트의 기본 컨셉트는 ‘뉴욕시의 기사 식당’이 아닌가!

택시 운전사들에 이어 싸고 양 많고 안전하고 맛도 괜찮은 점심을 원하는 회사원들도 할랄 푸드의 팬이 됐다. 점심 시간마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를 고민하는 한국 직장인들처럼 뉴욕 직장인들도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점심 정보를 찾아 헤맨다. 회사 근처의 맛있는 할랄 푸드 카트 정보 공유는 기본이다. 게다가 경제적인 이득도 있다. 식당에 가면 세금과 팁을 부담해야 하지만 노점에선 밥값만 온전히 지불하면 된다. 일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1달러 정도 팁을 준다해도 식당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내 경우엔, 모마 앞에선 호기심에 할랄 푸드를 먹었지만 금세 친해진 음식은 아니다. 무엇보다 길에서 플래터를 늘어놓고 먹는 방식이 불편했다. 길거리나 공원에서 대충 앉아 할랄 푸드를 먹는 모습은 전혀 따라하고 싶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채식주의자들이 사랑하는 팔라펠도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싸고 맛있는 양고기 플래터를 즐겨먹으며 동네 할랄 푸드 순위를 매기곤 했다. 뉴욕 대표 길거리 음식에 시큰둥했던 나는 아스토리아로 이사해 그 곳의 명물 카트인 ‘킹 오브 팔라펠 King of Falafel’의 팔라펠을 맛보고 나서야 항복을 했다. 막 튀긴 바삭한 팔라펠은 고소함의 왕이었다. 팔라펠이 이렇게 맛있는 튀김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이 곳에서 만드는 슈와마 플래터와 샌드위치는 여느 카트와 배틀을 벌여도 무난히 결승에 오를 맛이다. 간이 딱 맞게 양념된 고기에, 느끼하지 않게 잘 볶아진 밥, 감칠맛 나는 소스들이 균형을 이룬다. 어벤저스 사무실로 배달해주고 싶을 정도로 맛이 있다. 단점이라면 플래터 하나에 10달러대라는, 할랄 푸드 치고는 비싼 가격이다.

명성을 얻은 카트들은 하나둘 식당을 오픈한다. 몇년새 모마 앞 할랄 푸드 씬을 장악해버린 ‘할랄 가이즈’는 대학가인 이스트 빌리지에 식당을 열었다. 뉴욕 거리에 수많은 노점이 있지만, 일등만이 아메리칸 드림스러운 식당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때맞춰 각종 매체에서 ‘할랄 가이즈’성공 비밀을 열심히 보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비밀의 화이트 소스였다. 요거트, 사우어 크림, 코티지 치즈, 오이를 섞어 만든 듯하다는 추측만이 존재할 뿐 정확한 내용물은 공개되지 않았다. 퀸즈 아스토리아 동네의 내 사랑 ‘킹 오브 팔라펠’도 얼마전 식당의 꿈을 이뤘다. 이 곳은 싱글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기 때문에 테이크아웃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카트들은 할랄 푸드에 대한 기준을 상향 평준화시키고 있다. 더이상 싼 값만으로 고객을 유인할 수 없다. 심지어 가격으로만 놓고 보자면 몇년새 급부상하고 있는 푸드 카트계의 신흥강자인 멕시코 타코 Taco 트럭에서 파는 1~3달러 타코와 경쟁이 불가능하다. 맛을 개발하지 못하면 아무리 뉴욕 대표 스트리트 푸드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할랄 카트 업계에겐 다행스럽게도, 타코 트럭은 아직 할랄 푸드만큼 대중적으로 확산되진 못했다. 뉴욕에 남미 이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운수업 종사자는 적어서 시내가 아닌 그들의 거주지 중심으로 타코 카트가 분포되기 때문이다. 대개 최저 임금을 받고 일하는 멕시코 출신 서민들은 타코를 먹으며 허기를 채운다. 퀘사디야 Quesadilla, 타말레스 Tamales, 토스타다 Tostada 등 다른 메뉴들도 저렴하다. 할랄 푸드 카트는 이집트 갱단이 보호해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해도 갱단의 권력이 대중의 변화하는 입맛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인기가 사그러든 핫도그와 수블라키도 영원할 줄 알았던 거리 음식들이다. 과연 할랄 푸드의 인기도 사그라들게 될까? 흥미진진한 뉴욕 스트리트 푸드 배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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