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싱과 나와 중국 요리

뉴욕 맨하탄에서 7호선을 타고 동쪽 마지막 역에 내리면 ‘플러싱 Flushing’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퀸즈 동쪽이자 한국인 주요 거주 지역으로 한국 슈퍼마켓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때문에 뉴욕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동네다. 맨하탄 32번가 한인타운이 번쩍이는 자동차의 외관이라면 퀸즈 플러싱은 그 자동차를 움직이는엔진과 같다. 최근엔 뉴욕 옆동네인 뉴저지의 한인타운이 더 기세를 떨치고 있지만 어쨌든 뉴욕 사람들에게 ‘정통’한인타운이란 플러싱을 뜻한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뉴욕을 막 도착한 여행객이라면 맨하탄이든 퀸즈든 한인타운을 보고 일종의 문화충격을 경험한다. 좋게 말해 10년은 뒤떨어져 있는 듯한 구닥다리 풍경에 난데없이 창피한감정이 앞선다. “외국인들이 보게 될 한국의 이미지가 그렇게 세련되지 못하다니 정말 놀랐다니까. 내가 그 일부로 보일까봐 두려웠어”라며 지인들은 맞장구를 친다. ‘한국=나’로 여겨지는 동일시가 얼마나 심한 지 깨닫게 되는순간이기도 하다.(한국 때문에 왜 내가 창피해하지?) 시간이 흘러 적응이 되면 뉴욕 안에서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이민자들의 노력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게 된다. 그들 덕분에 한국 음식이 그리울때 장을 볼 수 있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식당과 상점이 있는 게 아닌가.

뉴욕에 와서 몇 년 간 플러싱에서 살았다. 맨하탄행 전철 및 고속 기차가 다니는 이 동네는 교통 조건에 비해 집세가 싼 편이다. 학교와 일터가 퀸즈였으므로 플러싱을 거주지로 택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봄에 쑥국이나 냉이국이먹고 싶으면 집 앞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사올 수 있는 편리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통신원 일 때문에 가야하는 장소는 보통 맨하탄이거나 브루클린이었다. 인연을 맺은 친구들도 맨하탄 아니면 브루클린에서 살았다. 한번은 브루클린에 사는 친구의 파티에 간 적이 있었다. 퀸즈와 브루클린 사이에 불편한 교통을 감수하고 1시간 반 넘게 걸려 파티에 갔다. 힙한 한국 사람들이 핫한 트렌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곳에서 누군가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플러싱에 살아요”라고 대답하니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 어디어디한국 식당을 가봤는데 굉장히 멀더라는 정도의 반응이 있긴 했다. 서울 사는 아이들의 서울 위주 대화에 지방에서온 사람이 꼈을 때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의 재스민이 어디서 왔냐는 물음에 “뉴욕”하고 자랑스럽게 “파크 애비뉴”를 덧붙였을 때 심정과 정반대의 기분일 것이다. 브루클린 사람들은 심지어 ‘뉴욕’도 생략하고 아마 ‘브루클린’이라고 대답하겠지. 한인타운을 마주하며 ‘한국=나’로 당혹해했던 나와 달리, 브루클린 거주민들은‘브루클린=나’로 여기며 국가대표 힙스터인 양 자랑스러워할까?

뉴욕에 도착해 친구와 트윗을 하며 뉴욕커의 인상에 대해 막 떠들었던 적이 있다. 곧바로 ‘뉴욕커들은 가방을 두개씩 메고 다닌다’ 등의 나의 짧은 관찰을 비웃는 토박이 뉴욕커들이 등장했고 ‘뉴욕에 관해 뭐든지 써드립니다’라는 통신원의 절박한 생계형 소개글을 공격하며 조리돌림을 시작했다.  그때 한 분은 뉴욕의 문화 통신원들에 관해‘퀸즈에 살면서 맨하탄을 취재하고 브루클린을 욕망한다’는 식의 꽤 날카로운 트윗을 남겼다. 퀸즈에, 그것도 플러싱에 살면서, 뉴욕에 관해 뭐든지 써드린다고 말하다니 경솔했다며 소개글을 지웠다. 수많은 뉴욕 매체글을 탐독하고 부지런히 맨하탄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경험치를 쌓았지만 뉴욕에는 너무나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 변방에 사는 초보 통신원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였다.

퀸즈는 스파이더맨의 고향이고 브루클린은 기껏해야 닌자 거북이가 최고 스타인 걸, 이라며 오덕식 위로를 해봐도 괜한 퀸즈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쨋거나 쿨하지 않은 동네였다. 길에 침 뱉는 동양인 아저씨들 말고쿨한 헤어스타일에, 쿨한 문신을 하고, 쿨하게 차려 입은 미국 분들과 교류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허세를위해 월세가 두 배나 비싼 동네로 이사를 갈 수는 없었다.

IMAG1274.jpg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내가 퀸즈에서 브루클린을 욕망하며 우울해 하는 동안,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부지런히 플러싱의 먹거리를 훑었다. 당시 플러싱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중국 이민이 몰려들면서 본토 중국 식당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9/11 테러 사태 이후 많은 홍콩계 이민자들이 플러싱으로 몰려들었다는 설도 있었다.터줏대감인 홍콩과 대만 이민자들이 하나 둘 빌딩을 사들이고 주택도 점유하면서 한인타운은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하철 역근처에는 한문 간판이 즐비했다. 그 속에 서 있으면 내가 뉴욕에 있는지, 베이징에 있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맛집 찾아다니는 뉴욕의 선구안들은 ‘정통’ 중국 음식을 찾아 원정을 오는 일이 빈번했다. 뉴욕에서 중국 음식은 언제나 인기 메뉴였고, 바야흐로 정통(영어로 ‘오쎈틱 Authentic’) 음식을 찾아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식당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맨하탄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플러싱 차이나타운만큼 중국 온 동네 식당들이 즐비하지 않았다.

가히 중국 음식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했다. 홍콩식 해산물찜, 상해식 소룡포, 사천식 마파두부, 후난식 매운 샤브샤브, 연변식 양고기 두부쌈, 대만식 육우탕, 산시식 도삭면. 게다가 뉴욕에서 손 꼽히는 쌀국수와 딤섬 식당이있고, 수많은 스타일의 만두를 맛볼 수 있고, 길거리 스낵은 1달러 양꼬치였다. 마치 온 동네 중국 음식들이 무협지식 문파 다툼이라도 하듯 끝없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오히려 제너럴조 치킨이나 쌔서미 치킨 같은 메뉴를 하는미국식 중국 음식집은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유기농 계란과 로컬 농장 채소로 만든 브룩클린의 에그 베네딕트 대신  다채로운 맛의 딤섬을 브런치로 먹으며 비로소 나는 플러싱의 매력을 깨달았다. 어린 아이들이 열광하는 브룩클린 남부식 바비큐 립을 줄 서서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홍콩 식당에 가서 마늘 기름에 볶은 던저니스 크랩을 먹으면 되니까. 브룩클린에 대한 욕망은 뉴욕에서 가장 맛있을 것 같은 탄탄면에 묻혀 갔다. 그렇다. 이 곳이야 말로‘먹는 게 남는 것’인 동네였다.(스페셜 땡스 투 남편!) 그리고 ‘먹는 게 남는 것’은 나의 인생 모토 중 하나이기도 했다.

Aviary Photo_131132940565287780.png몸무게는 묻지 마세요

브룩클린식 필라멘트 조명 하나 없는 중국식 허름한 식당에 앉아 저렴한 중국음식을 먹으며 나의 삼십대 후반 배고픔을 달래다 보니 어느새 플러싱 맛집을 하나 둘 꿰게 됐다. 중식 이외에 뉴욕 한식을 맛본다는 이점도 있었다. 뉴욕의 한식은 메뉴는 같지만 맛은 차이가 있다. 미국 재료들의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해 본 바, 뉴욕 야채는 한국의 것보다 맛이 덜 진하다. 일례로 청양 고추와 같은 맛의 고추는 없다. 매운 강도가 비슷한 할라피뇨(하바네로)고추를 사용하지만 청양 고추보다 덜 칼칼한 맛이다. 기본 재료가 다르니 만들어진 요리 맛이 다르지만, 이런 한인타운의 한식이 뉴욕 사람들에게는 한국음식의 스탠다드가 된다. 1.5세대나 2세대의 한국계 미국인 쉐프들이경험한 한식의 맛도 아마 이 범주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의 한식은 출발이 다르다. 플러싱에서 몇 년을살며 뉴욕 한식의 경험치를 쌓았다는 건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차이를 감지하고 양쪽 한식에 대해 떠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플러싱에 무슨 무슨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며?”라고 물으면 바로 별점까지 매겨 답해줄 수 있는 인간 맛집 검색단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할까.

게다가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것이, ‘뉴욕타임즈’의 저명한 음식평론가 피트 웰스가 플러싱에 와서 ‘오쎈틱한’ 한국 음식들을 맛보고 가서 기사를 쓰고, 셀러브리티 쉐프 앤서니 보뎅은 심심하면 ‘오쎈틱한’ 한식과 중식을 먹으러플러싱에 들른다. 플러싱의 한식이 한국에서 막 온 사람에게는 그다지 정통 한식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플러싱의 중식이 정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한국과 중국에 가서 음식을 맛볼 수는 없기에, 좀더 본토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맛이 정통의 승자가 된다. 언제부턴가 플러싱은 정통을 맛보려면 거쳐야하는 맛집 고수의탐험지가 됐고 나는 조언을 더할 수 있는 유경험자가 되었다. 그사이 나는 힙스터를 욕망했던 인생의 자세를 바꾸고 초보 푸디(Foodie, 음식 애호가)의 길에 들어섰다. 몇년 살아보니 브루클린에 살든, 맨하탄에 살든, 퀸즈에 살든 삶은 그저 살기 나름이다. 집앞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괜찮은 인디밴드 공연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뭐, 브루클린에 산다고 만날 공연만 보진 않겠지.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찾아가면 될 일이라고 ‘난시앙 Nanxiang’ 소룡포의 육즙을 삼키며 생각해본다. 결과적으로 플러싱의 삶은 괜찮았고 괜찮을 것이다. 내일 ‘시안 페이머스 푸드 Xi’an Famous Food’에 가서 오랜만에 글루텐 큐브를 곁들인 매콤새콤한 냉국수 리앙피 Liang Pi를 먹고 만두 천국 ‘덤플링 갤럭시 Dumpling Galaxy’에서 오리 & 버섯 만두를 먹는다면 더 괜찮을 것같다. 요즘 뜨고 있는 중국식 전병을 먹으려면 배를 비워놔야 할텐데, 라며 식탐 고민을 하는 오늘이다. 열심히 먹고 먹으며, 괜히 품었다가 상처만 입은 힙스터 병을 치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DSC04758.JPG로스트 덕은 기본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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