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도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새로운 비난은 아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평화 행진을 다룬 <셀마>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되었을 때 이슈가 되었던 해쉬태그 #OscarSoWhite(오스카는 너무 하얗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새삼 확인했을 뿐이다. 음악 역사 영화 중 <아마데우스> 이후 두번째로 많이 벌었다는 흥행작 <스트레이트 아우터 컴턴>이 각본상 후보에만 오르는 바람에 논란은 더 거세졌다.(게다가 후보 작가는 백인이다) 흑인 감독이 연출하고 흑인 배우가 주연한 <크리드>도 실베스터 스탤론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업계 비밀이였다가 2012년 <LA 타임즈>를 통해 폭로된 아카데미 투표인단 구성은 90퍼센트가 백인, 77퍼센트가 남자, 50대 이하 나이대는 14퍼센트다. 한마디로 60대 백인 할아버지가 선호하는 영화들이 그해 미국 영화계를 대변한다는 말이다. 인종적, 성적 다양성을 ‘공공의 선’으로 보는 미국 사회에서 이런 아카데미 위원회를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더이상 사람들은 예년처럼 ‘오스카가 그렇지, 뭐’ 정도로 웃어넘기지 않아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하얀 오스카가 시대에 발 맞추기 위해 주목을 좀더 했어야 할 두 영화가 있다.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 Beasts of No Nation>과 <탠저린 Tangerine>이 그 영화들이다.
아프리카의 보이후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발표되었을 때, 인종적 형평성과 상관없이 가장 논란이 되었던 배우는 남우조연상 지명에 탈락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알바였다.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은 아프리카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전쟁 병사로 내몰리는 소년의 시선을 쫓아간다. 천진난만했던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군인이 된다. 이드리스 알바는 여기서 아이들의 복수심을 부추겨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사악한 사령관으로 등장한다. 직접적인 잔인한 행동없이 눈빛과 말투만으로 캐릭터의 괴물같은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해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스트레이터 아웃터 컴턴>과 <크리드>의 후보 지명 탈락은 완성도에 있어 이견이 분분하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드리스 알바의 경우 ‘이드리스, 너마저’란 한탄과 함께 인종차별 의혹이 이는 게 당연해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는 영화제가 반길 만한 심각한 인권 이슈를 담고 있다.
아프리카 소년병들의 증언을 모아 완성한 소설이 원작이며 <트루 디텍티브>의 캐리 후쿠나가가 감독을 맡아 아프리카 전쟁의 참상을 매우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촬영까지 겸한 감독은 잔인한 전쟁과 아름다운 자연을 대비시키며 비극을 더 깊이있게 만들고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잔인한 장면을 거르지 않는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괴물이 되어가는 소년과 전쟁의 참상을 견뎌내야 한니 편안하게 감상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이런 심각한 영화가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었다는 점은 더 흥미롭다. 잠깐동안 한정된 극장 개봉을 하고 바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넷플릭스 플랫폼을 이용한 스트리밍 배급은 영화계 구조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만약 아카데미가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얀 오스카’ 비난에 대한 변명거리도 마련하고 넷플릭스를 영화 산업 궤도에 끌어들이는 혁신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오스카에게 이런 걸 바라는 게 무리일테지.
아이폰 세대의 영화 <탠저린>
인종차별만 오스카의 문제가 아니다. 우아한 레즈비언 멜로드라마 <캐롤>은 작품상과 감독상에서 제외되었고 이에 이에 팬들은 #OscarSoMale(오스카는 남성 중심이다)라는 해쉬태그로 비난했다. 그나마 <캐롤>은 루니 마라를 조연으로 강등시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으니 다행이랄까. 작년 한해 젠더 이슈에 있어서 <캐롤> 못지 않게 화제가 되었던 영화가 있다. 바로 100퍼센트 아이폰으로 촬영된 트랜스젠더 코미디 드라마 <탠저린>이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였던 <탠저린>은 인디영화계 거물 배급사 매그놀리아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이전 선댄스 영화제 화제작인 <위플래쉬>가 아카데미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던 걸 돌아보면 <탠저린>에 대한 오스카의 관심은 차갑기 그지 없다.
일면 당연해 보인다. 오스카는 트랜스젠더가 정체성과 싸우는 휴먼 드라마 <대니쉬 걸>은 좋아하지만 트랜스젠더가 하층민으로서 상소리를 해매며 계급적 정체성을 마구 드러내는 영화에는 불편해하는 것같다. 더군다나 영화를 아이폰으로 찍었다고? 영화의 오랜 팬이라면 내용없는 3D 짜집기는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어도 아이폰으로 촬영되어 유튜브에나 업로드되야할 영화를 영화라 불러야할지 헷갈려할 수 있다.
두 트랜스젠더가 바람피운 포주 남자친구를 찾아 로스앤젤레스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모습을 쫓아가면서 <탠저린>은 마치 아이폰으로 도그마 선언이라는 하려는 양 사실주의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다. 이야기의 한축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태우는 이민자 택시 운전사의 고단한 삶이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의 하루는 너무도 드라마틱하고 피곤하고 힘겹다. 역할을 맡은 비전문 배우들은 아이폰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서브컬처를 엿보는 듯한 이국적 재미를 선사하는 이 영화의 교훈은 무엇일까?
서브컬처 영화를 찍을 때는 거친 생동감을 위해 아이폰으로 찍어라? 아마도 영화를 엄청나게 찍고 싶은 사람이 카메라 구할 돈이 없어 영화를 찍을 수 없다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인디 스피릿 어워즈와 아카데미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 독립영화 시상식인 ‘인디 스피릿 어워즈’가 개최된다. 지난 십여 년간 인디 스피릿 어워즈는 영화 시상식이 어떻게 영화계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흥미롭게도 <아티스트> <노예 12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버드맨> 등 몇 년 동안 인디 스피릿 어워즈와 아카데미 수상자 명단이 거의 일치했다. 메이저 영화사가 계열사를 만들어 독립영화계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를 잠시 접어둔다면, 이는 독립영화들이 미국 영화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올해 아카데미 후보인 <스포트라이트>나 <룸> 같은 영화들도 독립영화들이다. 또한 인디스피릿어워즈에서 수상한 배우들은 아카데미 배우상 후보에도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이번 인디스피릿어워즈에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알바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소년을 연기한 어린 배우 에이브러험 애타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탠저린>의 마이야 테일러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오픈리 트렌스젠더로서 처음 수상한 배우라는 젠더적인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면을 당했다. 아카데미가 너무 백인 중심이고, 남성 중심이어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SNS에 시상식 시청 보이콧을 선언하며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하고 있다.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보이콧으로 아카데미는 긴급하게 멤버의 다양성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사후 약방문에 가까웠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스카가 그렇지, 뭐’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안스러울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이 할아버지들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은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다면 차라리 인디 스피릿 어워즈 후보 컨닝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같다. 안 그러면 내년부터 OscarSoOutdate(아카데미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는 해시태그가 추가로 따라 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늘 그랬듯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고 한다면 ‘그 고리타분한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게될 지도.
P.S. 올해 오스카 후보작들은 대체로 훌륭합니다. 그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