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구조가 인상적인 바클레이즈 센터
미국 땅에 와서 좋은 점은 수많은 공연들을 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예매 경쟁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름이 알려진 뮤지션들의 공연은 대부분 ‘티켓마스터(ticketmaster)’를 통해 예매한다. 50달러짜리 티켓 가격을 보고 예매를 시도했을 때, 티켓마스터가 가져가는 서비스 수수료는 많게는 10달러 넘게까지 붙고, 정체불명의 진행 수수료로 2달러 정도가 더 붙는다. 그래서 분명 나는 50달러 티켓을 샀는데 결국엔 75달러 가까이를 결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기에 우편 배송을 선택하면 10달러가 더 붙는 돈*랄 사태가 발생한다. 문제는 이런 투덜거림도 티켓 여유분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는 것.
지금 가장 핫한 뮤지션의 공연인 경우 대개 예매 개시 시간이 공시되는데, 그 시간이 딱 되자마자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부지런히 클릭질을 하지 않으면 5분 만에 ‘매진’이란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시스템 오류인가 싶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인터넷 기사로만 봤던, 바로 그 ‘5분 매진’ 상황에 내가 놓여 있다는 것을. 그렇게 ‘새로고침’을 몇 번씩 누르면서 애타는 심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좌석표가 뜨든 구입하고 말리라는 전의가 불타오르지만, 어차피 승리의 확률은 희박하다. 인기 뮤지션의 공연이라면 일찌감치 베테랑 암표상들이 티켓을 싹쓸이해 간 다음 2차 시장에 두 배 넘는 가격으로 내놓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별다른 운발이 없던 나는 미국 인터넷 예매운마저 없었다. 아델, 아케이드 파이어, LCD 사운드시스템 등 불운의 리스트는 매년 늘어만 간다.
흥미롭게도 가끔 이런 시스템을 비껴가는 분들이 있다. 올해 초 [Bankrupt!] 앨범 발매를 기념해 이틀간 뉴욕 공연에 나선 피닉스가 그랬다. 공연 장소는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뮤지션들의 성지 ‘아폴로 시어터’였다(피닉스가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의 팬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돼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티켓은 이메일 추첨을 통해 예매권에 당첨된 사람들만 살 수 있다고 했다. 불만이 쏟아지는 티켓마스터 예매 전쟁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예매 인원을 제한할 의도였다. ‘구매권도 아니고 예매권이 웬 말이냐’고 투덜대면서도 잽싸게 메일을 보냈다. 미국에서 피닉스가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싶어 당연히 공연을 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PDF 티켓. 티켓 가격 50달러 + 봉사 수수료 11.15달러 + 진행 수수료 3달러 = 합계 64.15달러!
그러나 박복한 예매 팔자가 갑자기 역전될 리 없다. 피닉스 측은 공손하게 탈락 메일을 보내왔고, 그 내용 중엔 ‘우리가 10월에 브루클린 바클레이즈 센터에서 공연할 예정이고 예매 오픈은 4월인데 너한테 하루 일찍 두 장 예매할 수 있는 권한을 줄게’라는 식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마돈나의 11월 공연을 2월부터 예매하는 나라였으니 10월 공연을 4월에 예매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다. 요는, 이 작은 공연이 더 큰 공연 홍보와 예매 유치를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 뭐, 이런 다단계 예매 낚시가 다 있담. 어쨌든 이 과정을 거친 덕분에 인기 많은 피닉스 공연을 예매 오픈 전날 매우 여유롭게 예매할 수 있었다. 10월이 다가올수록 2차 시장에선 티켓값이 두 배 이상 뛰는 걸 목격하며 ‘팔아버릴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돈 욕심보다는 공연 욕심이 더 컸다.
(두둥실 과거 회상 모드로 말하자면,) 피닉스를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이던가. 테크노 바람이 불어닥친 홍대를 떠나 신촌을 서성거리다 발견한 작은 바에서 ‘If I ever feel better’를 듣고 반해버리지 않았던가. 헤드뱅잉과 고성방가가 전문이었던 모던록 소녀들이 바야흐로 일렉트로닉과 록을 청량하게 섞은 새 세대 음악을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처럼 2000년의 작은 바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피닉스를, 2013년에 제이지가 얼굴마담으로 있는(그리고 약 0.2%의 지분도 가지고 있는) 브루클린의 핫한 아레나 공연장 바클레이즈 센터에서 1만 8천 관중과 함께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21세기 초반을 같이 보낸 동네(음, 신촌?) 친구의 성공을 목격하러 왔다고 멋대로 감격하며 공연장으로 입장하는 관중 1인이었다.
몇 년 전 뉴욕 공연에서 ‘베프’ 다프트 펑크를 데려와 전설의 무대를 만들었던 피닉스였으나, 올해는 조촐하게 자기들만 무대에 올랐다. 드럼 멤버를 영입한 피닉스의 사운드는 에너지가 넘쳤다. 보컬 토마스는 별다른 멘트도 없이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흔들림 없이 꽤 노래를 잘해서 더 인상적이었다. [Wolfgang Amadeus Phoenix] 때부터 미국에 소개되는 바람에 신생 힙스터 밴드인 양 오해도 받지만, 이래 봬도 15년 가까이 무대에 서온 중견 밴드인 것이다. 무대 뒤에 영사되는, 노래와 정말 약간의 연관성만 있어 보이는 썰렁한 영상들은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관중들 속의 토마스
보통 티켓을 예매할 때 서비스 수수료를 보면 그 공연의 화려한 정도를 예상할 수 있는데, 11달러가 넘는 고가의 수수료치고는 참으로 수수한 무대였다. 토마스는 그 수수한 분위기를 ‘땡큐’ 인사와 함께 관중석을 종횡무진하는 팬서비스로 극복해냈다. 눈을 홀리는 화려한 무대보다 팬과 장난치는 것에 더 관심 있어 보이는 이 프랑스 아저씨 밴드는, 거대한 아레나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형들 같은 친밀한 기운을 공유하는 데 성공했다. 또다시 나는, 신촌 친구는 변하지 않았다고 제멋대로 감격하며 공연장을 나서는 관중 1인이었다.
인터넷 예매 전쟁으로 시작해 피닉스 공연과 개인 감상이 혼재되어버린 이글의 결론은, 2000년 신촌에서 2500원짜리 카스와 밤을 새웠던 청춘이 10년이 지나 의도치 않게 뉴욕 변두리에서 공연 예매 경험치를 쌓고 있다는 것이다. 10달러가 넘는 아레나 공연장의 ‘크래프트’ 맥주 가격에 황당해하고, 30달러가 넘는 기념 티셔츠를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보니 뉴욕에 있다. 인생은 모를 일이다. | 홍수경 janis.hong@gmail.com
2013.11.21
note. 10년 동안 잡지 기자로 살던 홍수경의 마지막 직장은 [무비위크]였다. 90년대 초중반, 헤비메탈의 성은(聖恩)을 듬뿍 받은 인천과 모던 록의 돌풍이 불던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청춘을 다 보낸 열혈 음악 키드였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 잡지 기자로 일했고, 어쩌다 보니 뉴욕에 살고 있다. 외고는 언제나 환영! 개인 블로그(69)는 여기! http://sixty-nin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