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 러프 트레이드에서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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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당혹스러운 음악 트렌드는 바이닐의 부활이다. 20세기 한국에서 ‘롱 플레잉(Long Playing)’의 앞자를 따 ‘엘피(LP)’라 부르던 그 물건이 이제는 한국에서도 뭔가 새로운 발명품인 양 ‘바이닐’로 통용되는 현실. (게다가 외래어로서 정확한 발음은 ‘비닐’인데!)

이 당혹감의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카세트 테이프와 엘피를 지나 CD와 mp3 파일로 음악 저장 방식이 ‘진화’했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엘피가 튀어나와 미래가 과거로 유턴해버렸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천원 주고 엘피를 사 모으던 시절 CD는 만원이 넘어가는 고가품이었다. 그땐 돈이 궁해 CD를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CD의 디지털 사운드가 비인간적이고 차갑고 허전하다며 딴죽을 걸었다. 고가의 앰프와 턴테이블, 스피커를 세트로 구비해놓고 몽크(Monk)의 엘피를 틀어주던 대학 선배 자취방에 앉아서는 ‘아아, 역시 음악은 엘피가 제맛’이라는 식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엘피는 매장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를 CD가 차지했다. CD가 대중적인 저장 매체가 되니 어떤 사람들은 같은 디지털 녹음이라도 메이드 인 코리아, 저팬, 유에스에이의 음질이 다르다고 말하며 가격이 1,5배가 넘는 수입반만 사모으기도 했다. 시급 오천원도 안되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나는 그 고가의 음악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신청곡 잘 틀어주는 신촌이나 홍대의 록카페로 들어가거나, 음반 매장의 세일 품목을 뒤지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mp3 시대가 온 뒤에야 음악 좀 듣겠다며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이때는 또 mp3냐, AAC냐, FLAC이냐 아니면 다시 CD냐를 따지는 음질 혹은 선호도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자, 이게 웬 할아버지 육이오 전쟁담같은 옛날 이야기인가 싶을지 모른다. 풀이하자면, 이런 퀴퀴한 냄새나는 사연의 아줌마가 어쩌다가 뉴욕에 갔는데 하필 엘피가 대유행이었고, 그래서 옛 친구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 엘피나 좀 사볼까 했더니 웬걸, 그 가격은 CD보다 훨씬 비싸더라는 얘기랄까… 게다가 힙스터 교양 목록 같은 고가의 빈티지 콜렉션을 보면, 그야말로 내가 한때 어떻게든 아등바등 모았다가 이사하느라 처분할 수밖에 없던 엘피들의 목록과 일치할 때의 그 난감함! 마치 싸게 팔아치운 부동산 시세가 열배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땅주인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팔아먹을 땅이 있으면 정말 좋겠네) 더불어 1세대 아이팟으로 처음 음악을 들었을 것 같은 20대 아이들이 ‘내추럴 사운드 운운’하면서 엘피를 사 모으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이 비비꼬인 꼰대 게이지가 더불어 무한 상승하는 것이다. 아이리버(!)도 아니고 아이팟 따위의 그 후진 음질로 음악듣던 아이들이 ‘내추럴 사운드’에 대해 뭘 안다는 말이더냐! (삐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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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전문가가 아니라서 엘피의 사운드가 실제로 CD보다 따뜻하고 풍부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린 날의 향수 때문인지 더 인간적인 것 같은 사운드였다고는 기억한다. 물론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의 그 우열은 끝나지 않는 논쟁과 같아서 작년에는 피치포크에 ‘정말 바이닐 사운드가 더 나은가?’란 글도 올라온 적이 있다. 엘피 사운드가 더 낫다는 증거는 사실 상 없으며, 같은 CD와 똑같은 마스터 음원으로 엘피를 제작한다는 의혹도 있고, 무엇보다 감상자들의 선호는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게 저 글을 쓴 필자의 주장이다. ‘그래, 엘피 수집가들에게 꿀릴 이유는 없어!(불끈)’하는 마음으로 (소위 힙스터 상점이라 불리는) 얼반 아웃피터스에 쌓인 크로즐리 턴테이블을 향해 ‘훗, 허세 같으니…’라고 비웃는 이 비뚤어진 마음이여. 여기까지, 요약하자면, 과거의 바이닐이 알고보니 인류역사상 최상의 사운드여서 부활했나 싶었는데, 정작 ‘내추럴 사운드’를 찾는 유행에 가깝다는 걸 알고 난 뒤에 안도감에 빠져 ‘자칫 구렁텅이처럼 빠져들었을 지도 모를’ 경제적 낭비와 압박으로부터 다행히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한 번 더 내 안의 바이닐 버튼이 눌린 건, 지난 4월 셋째주 토요일에 열린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맞아 브룩클린의 음반 가게 ‘러프 트레이드’를 찾았을 때였다. 1970년대 영국 펑크 음악 씬을 이끌었다는 런던의 음반 가게 ‘러프 트레이드’가 지난해 말,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에 뉴욕 분점을 냈다. 컨테이너 박스를 재활용한 내부 구조는 쿨하기 이를 테 없고, 정갈하게 정리된 수많은 바이닐을 만지작거리노라면 이 곳이 천국인가 싶었다. 심지어 이 레코드 천국은 ‘힙’하기까지 해서 지금 당장 인디 씬에서 주목받고 있는 음악들이 쉴 새 없이 플레이되는 것이다. 워 온드럭스(War on Drugs), 맥 드마르코(Mac DeMarco), 멜트 유어셀프 다운(Melt Yourself Down), 다크사이드(Darkside)처럼 주옥같은 핫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한가롭게 머무를 수 있는 곳. 하루 종일 있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곳. 영화 [하이 피델리티](한국어 제목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처럼 음악 마니아들의 대화가 오고가는 게 당연해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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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꼭 바이닐 때문에 러프 트레이드를 방문한 건아니었다. 현재 이 곳은 음반 가게보다는 옆쪽에 만들어 둔 공연장이 더 유명하다. 인디밴드 중 막 뜨기 시작한 밴드들을 주로 유치하기 때문에 음반팬이라면 공연 리스트를 꼭 점검해둬야 한다. 뿐만아니라 앨범 홍보를 위한 공짜 공연들이 많다. 이 날은 무려 지난 CMJ 뮤직 마라톤및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서 ‘될성부른 떡잎’ 수준으로 인정받은 노이즈 펑크 밴드 ‘퍼펙트 푸시 Perfect Pussy’의 무료 공연이 잡혀 있었다.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동안 한 모범생 타입 커플은 ‘요새 밴드명들이 왜 이러나’라며 각종 이상한 밴드명을 읊어댔고, 메탈계 중년 아저씨는 공연 리스트를 보더니 ‘뭐야! 아는 밴드가 하나도 없잖아!’라며 충격이 담긴 탄성을 내질렀다. 무슨 말이든 음악덕들의 말을 듣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퍼펙트 푸시 공연만 보면 완벽할 하루였으나 잠시 후 스태프가 공연 취소 소식을 알려왔다. 아아 낚였다!

 

그 다음 밴드 피어 오브 맨(Fear of Men)의 공연까지 대기 시간은 약 두 시간. 할 일이 딱히 없으니 매장을 돌아다니며 사지도 않을 바이닐을 구경했다. 매장에는 청취용 CD 플레이어가 사방에 놓여 있었다. 그나마 낯익은 이름은 ‘벡’ 정도였고 거의 처음 듣는 밴드들의 CD가 모여있었다. 방금전 메탈 아저씨의 충격은 남 일이 아니었다. “뭐야! 아는 밴드가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아는 밴드가 하나도 없는 게 당연하니, 미리 들어보라고 여기 플레이어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CD 겉면에는 스태프들이 쓴 짧은 소개글이 붙어있었다. 좋은 음악이길 바라면서 하나하나 감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몇 년 만에 CD를 샀다. 듣고 반한 음악을 남겨두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음반을 살 때의 설레이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옛날옛적 타워레코드, 파워스테이션, 핫트랙스, 뮤직랜드 등의 대형 음반 가게가 득세하던 시절 바구니에 CD를 쓸어담던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바라던 음반 하나 사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저렇게 왕창 살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여전히 그렇게 쓸어담을 수 없는 처지이나 그다지 불행하진 않았다. CD 한 장, 바이닐 한 장을 사면서 소중해하던 감정이 되살아나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디지털 파일 다운로드만 하다가 어느새 잊힌 감정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바이닐을 단지 음질 때문에 사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싸지도, 또 아주 비싸지도 않은 그 가격은, 돈을 모아서 꼭 사고 말겠다는 구매 의지를 자극할 만한 정도다. 바꿔 말해, 내가 20세기에 경험했던 그 주술같은 음악 소비의 방법이 지금도 유효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어린이들의 허세’라며 코웃음치던 꼰대의 마음은 금방 부서졌다. 좋아하는 음반을 손에 딱 쥐었을 때의 그 기분이 얼마나 애틋하고 소중한지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게 아무리 개인의 사소한 판타지라고 해도, 괜히 뽕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물론 나는 앞으로도 바이닐을 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걸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물론 ‘컷 앤 페이스트’ 작업을 위한 바이닐 구매는 논외로 합니다요…) | 홍수경 janis.hong@gmail.com

 

note. 10년 동안 잡지 기자로 살던 홍수경의 마지막 직장은 [무비위크]였다. 90년대 초중반, 헤비메탈의 성은(聖恩)을 듬뿍 받은 인천과 모던록의 돌풍이 불던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청춘을 다 보낸 열혈 음악 키드였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어쩌다 보니 뉴욕에 살고 있다. 외고는 언제나 환영! 개인 블로그(69)는 여기! http://sixty-n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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