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리대 정착기

첫 생리 이후 매달 나는 같은 고민을 겪어왔다. 어떤 생리대를 사용해야 더 쾌적하게 이 시기를 보낼 수 있을까? 가격은 비싸지만 현재 뜨고 있는 유명한 생리대를 한번 사볼까? 수면용을 중형 사이즈로 버틸까, 오버나이트를 더 사야 할까? 안타깝게도 돈은 늘 넉넉치 않았기에 가장 비싸고 유명한 생리대를 선뜻 살 순 없었다. 언제나 매번 쓰던 걸 사고 난 뒤 후회하며 다음 달에는 더 나은 제품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지난 세월동안 여러 생리대 브랜드가 등장했고 잠깐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날개가 등장한 혁명적 순간도 있었고, ‘마법’이라는 은어를 만들어준 브랜드도 있었다. 한방 성분 트렌드를 지나 순면 감촉이 대세가 되었고, 나의 피를 정화라도 할 셈인지 여기저기서 ‘순수’와 ‘퓨어(pure)’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비닐 냄새 나는 부직포 같은 표면이 순면 커버로 대체되고 있으니 이를 생리대의 진화라고 보아야 할까? 그러나 나의 몸은 정직했다. 예쁘고 깔끔한 포장에 눈이 홀려 선택을 하면 몸이 바로 반응을 했다. 10년을 넘는 시간 동안 생리대를 하면서 한번도 불편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아프고 가려웠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화젯거리였다. 그저 내가 몸을 청결하게 관리하지 못해 생긴 반응이거나, 생리를 하는 여자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고 여겼다. 생리대 광고 속 여자들은 생리대를 하는 순간 생리통에서 벗어나 구원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들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 2000년대 중반즈음 ‘천연’이니 ‘오가닉’이니 하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왔다. 피부 알러지가 심해져 화장품과 음식을 조심하다 보니 그 영역이 생리대까지 닿게 됐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생리대가 피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들이 돌았다. 순면 생리대를 쓰면서 생리통 및 피부염이 나아졌다는 수기를 목격하곤 했다. 세간에서 추천하는 북유럽산 생리대는 꽤 비쌌고 불편한 포장이었다. 건강도 중요하지만 생리대를 싸서 버릴 수 있는 포장지와 낱개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함을 포기하긴 어려웠다. 한방성분이 들어간 생리대가 내 몸에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다른 정보도 없이 광고 문구로만 생리대를 선택해왔던 소비자의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해 슈퍼마켓 생리대 선반을 마주했을 때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낯선 생리대 브랜드 몇 개가 판매율 1위  탐폰들 속에 숨어 있었다. 미국 탐폰 광고는 어떤 ‘순수함’도 내세우지 않고 생리를 하더라도 편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줬다. 탐폰이 대세일 수밖에 없는, 탐폰의 나라였다. 허나 그 당시 탐폰은 쇼크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있었고, 덕분에 달랑 두세 개였던 생리대 브랜드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무염소(Chlorine-free)’ 문구를 강조하는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생애 최초로 생리대의 ‘유레카’를 외치게 되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생리 알러지가 줄어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염소였어! 주기율표 17번에 빛나는 염소는 생리대에서 표백을 담당한다. 정확하게는 염소계 표백제가 면과 레이온을 섞어 만든 생리대 커버를 눈부시도록 하얗게 만들어왔다. ‘무염소’라고 표기된 생리대도 말 그대로 염소만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염소계 표백제로 어떻게든 표백을 한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완전히 무염소’라고 두 번 강조된 제품을 사야한다고 조언한다. 염소 제품을 태울 때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생성되는데 이는 생리대를 굳이 태워서 버리지 않는다면 바로 인체에 들어올 일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생리대를 소각할 경우 자연에 다이옥신을 풀어놓는 꼴이 된다. 다이옥신이 함유된 사료를 먹은 소의 등심을 먹으면 체내에 다이옥신이…

줄서기 극기 훈련, 크로넛 먹기

‘빨리빨리’ 정신으로 유명한 한국인으로서 뉴욕에서 사는데 가장 큰 번거로움이 있다면 ‘줄서기’를 꼽겠다. 조금이라도 싼 슈퍼마켓(대표적으로 Trade Joe’s)에서 물건을 사려면 쇼핑 시간보다 훨씬 긴 계산대 줄을 감내해야하고, 거의 예약을 받지 않는 화제의 일본 라면 가게에서 무언가를 먹으려 하면 1시간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들이 직원으로 등장하는 도로교통국 DMV를 갈 일이 생긴다면 대기 시간이 예측불허이기 때문에 하루 휴가를 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내일 DMV 가야해요.” “저런. 행운을 빌어요.” 뭐, 이런 연민의 대화가 오가는 게 다반사다.  ‘쉐이크색’ 버거를 꼭 먹어야 하는 뉴욕 관광객이면 모르겠으나, 거주민들에게 ‘줄서기’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일상사다. 특히 밥 빨리 먹기로 유명한 한국인이라면 1시간 기다려서 20분 만에 밥 먹고 나오는 상황이 너무도 시간낭비로 여겨지는 것이다.(너 말이다! 쉐이크색!)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소호에 있는, 딱히 특별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인기는 많은 쿠바 식당 ‘잭스 와이프 프레다 Jack’s Wife Freda’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잠깐 멈칫했다. ‘간만에 줄을 서 볼까’하는 자세로 도착했지만 호스트가 당연하다는 듯이 ‘4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을 때 후회가 솟구쳤다. 그러나 쿨한 뉴욕커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오케이’라 답해야만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 보니 시간이 훌훌 지나가긴 했지만 대기자들의 줄이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대기 리스트도 없이 대기자의 이름과 얼굴을 외워서 호명하는 호스트의 능력에 감탄하고있을 때, 한 소녀가 와서 물었다. “뉴욕의 식당 줄서기 경험에 대해 조사 중인데 도와 줄래요? 학교 과제를 하는 중이거든요.” 몸이 배배 꼬일 만큼 지루한 줄서기를 하다 보면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반갑기 그지없다. 게다가 즉석 인터뷰라니, 오히려 이쪽에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가장 오래 줄을 섰던 경험을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