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뉴욕 아시안영화제 프로그래머 인터뷰

옛날 옛적 뉴욕, 다섯 명의 홍콩 영화 마니아가 있었다. 홍콩 영화를 보여주던 극장이 문을 닫자 그들은 ‘서브웨이 시네마’란 조직을 만들고 1000달러씩 출자해 ‘두기봉 회고전’을 준비했다. 폴 카제, 브라이언 나스, 고란 토팔로비치, 냇 올슨, 그레이디 헨드릭스. 아시아인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아시아 영화, 특히 액션 영화를 너무도 사랑했던 이들은 2001년 ‘뉴욕 한국 영화제’ 진행을 발판 삼아 2002년 ‘뉴욕 아시안 영화제(NYAFF)’를 개최했다. 영화제라고 하지만 5개국에서 온 11편의 영화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점점 아시아 영화 오타쿠들의 성지로 거듭나고, 박찬욱이나 미이케 다카시, 스즈키 세이준 등의 영화가 첫 소개가 되면서 점차 뉴욕의 필수 구경거리로 자리 잡아갔다. 주요 거점은 다운타운의 IFC 센터였으나(마더와 놈놈놈이 여기서 단관 개봉) 올해는 부티 나는 업타운의 링컨센터 극장으로 이동,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됐다.
무턱대고 취재하겠다고 이메일을 보냈는데 모두들 친절하게 맞아줘서 대감격. 올해 초점은 ‘홍콩 뉴 액션 시네마’와 ‘일본 언더그라운드 시네마’였다. 엄청난 발견의 의지를 다지는 영화제는 아니고 그냥 재미있게 놀자는 게 목표. 그 가벼움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한국영화는 <여배우들> <김씨표류기> <의형제>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 <작은 연못> <과속 스캔들> 등이 초청. 이재용 감독과 이해준 감독, 그리고 작년 최고 단편 <남매의 집>의 조성희 감독이 뉴욕을 찾았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쪽을 주로 담당한다는 프로그래머 고란 토팔로비치를 만났다. 서브웨이 시네마를 만든 5인 마니아 가운데 이제 남아있는 오리지널 멤버는 고란과 그레이디 두 명이다. 다른 두 명의 멤버들이 더 있고, 그들과 몇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게스트 관리부터 선물 이벤트까지 모든 걸 다 알아서 한다.
긴장을 많이 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고란은 굉장히 친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물며 2MB라는 고유명사까지 알고 있어 깜놀. 20분을 예상했던 인터뷰는 예상 외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1시간 20분 동안 이어졌다.(사실 20분은 나의 더듬거리는 영어 스피킹 때문이었다) 영어 녹취를 풀고난 뒤 고작 잡지에 들어간 분량은 반의 반도 안되는 상황. 영어 녹취에 들어간 노력이 아까워 블로그 공개하기로 결심.
무엇보다 요근래 나눴던 어떤 한국영화 수다보다 더 생산적인 대화였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심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을 왜 우리는 ‘열심히 하지만, 아마 우린 안 될 거야’라고 몰고 가고 있었던 걸까.
아무튼 영화제와 인터뷰를 겪고 난 모든 결론은. 와이 소 씨어리어스? 영화는 즐거울려고 만든 거 잖아요. 안 그래?

친구 디자이너가 리미티드로 만들었다는 KISS와 김동지의 믹스 티셔츠. 이해준 감독은 티셔츠 탐나는데 만약 입고 입국하면 잡혀갈 거 같다고 했다

– 링컨 센터로 오면서 달라진 점은?
규모가 커지다 보니 아무래도 일이 더 많아졌다. 서브웨이시네마가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 기본 컨셉은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치 친구들에게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며 추천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초점은 오로지 관객에 대한 것이다. 레드카펫이나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우리의 관심 밖이다. 흥미롭고 독창적인 열정들을 공유하고 훌륭한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시아인이 아무도 없어서 놀랐다) 미국의 아시아 영화팬들이 꼭 아시아인일 필요는 없지 않나. 70~80년대 홍콩영화들, 그리고 구로자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가 만든 일본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빅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라고 권하는 셈이다. 물론 차이나타운에 가서 dvd를 사거나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생각을 공유할 기회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들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작년에 우리는 스타 아시아 어워즈를 만들었다. 매년 영화를 보면서 주목할 만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여기로 데려와서 좋은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작년에 소지섭과 공효진이 온 게 시작이다. 올해는 홍금보와 임달화, 황보가 왔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고 모셔올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런저런 행사 때문에 일은 더 늘어났다. 우리는 원래 작게 시작한 영화제였는데 이제는 뭔가 관리해야 하는 게 많아졌다. 스트레스도 많긴 한데 그러나 관객들이 와서 영화를 즐기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면 모든 게 괜찮다.
– 관객은 늘었나?
확인해봐야 한다. 늘었기를 희망한다. 업타운으로 왔고 링컨 소사이어티 멤버도 관객으로 참여하면서 수치가 늘어났을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ifc 센터가 거점이었다. 저팬 소사이어티가 합류하면서 지난 두 해 동안 11000명 정도를 유지했고 그 숫자가 우리가 데려올 수 있는 최고 많은 관객인 것같다. 그 숫자를 유지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링컨 센터로 왔으니 더 많은 관객들이 즐겼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는 굉장히 긍적적이다. 사실 다운타운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고 싶었다. 옮겨오는 바람에 불편을 드렸는데, 그들도 변함없이 영화를 보러 왔기를 희망한다. 한편으론 링컨 소사이어티 센터로 오면서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좀 더 젊은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리컨 센터와 관객층의 변화, 좋은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 언제부터 한국영화 쪽을 프로그래밍해왔나?
사실 우리는 의견 일치를 통해 프로그램을 선정한다. 우리는 모든 영화를 본다. 빅 스크린 TV에 팝콘과 맥주를 갖추고 같이 볼 때도 있고 각자 알아서 볼 때도 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한 팀으로 영화를 선정한다. 그런데 영화 편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각 지역 영화사들과 연락할 담당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내가 한국을 담당하고 있다. 그레이디는 보통 홍콩을 담당한다. 마크는 도쿄 필름 엑스과 연락하고 자주 도쿄를 오가며 네트워킹을 한다. 우리는 서로 어떤 영화가 있고 어떤 영화에 주목해야 하는지 계속 정보를 교환한다. 그러나 그건 ‘담당’일 뿐이다. 프로그래밍은 모두 함께 한다.
–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선정하나?
기본적으로는 각자의 취향에 기반한다. ‘이 영화 좋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이다. 물론 한 영화를 모두 다 좋아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심볼>은 그레이디와 나는 좋아하지만 정작 일본을 담당하는 마크는 싫다고 했다. 우리는 언쟁을 하기도 하지만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에는 수긍을 한다. 할리우드 영화와 다르게 아시아 영화들은 여전히 어른을 위한 멋진 장르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아이언 맨 2>같은 영화를 즐길 수도 있지만 때로는 좀 더 지적이고 복잡한 어른 영화가 그리워진다. 아시아 영화는 즐거우면서도 지적이다. 나는 현대 아시아 영화들이 그런 균형을 잘 맞춘다고 생각한다.
– 잠깐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뉴욕에 오면 더 다양한 영화를 보게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 물론 미국 영화는 다양하다. 하지만 유럽이나 아시아 영화를 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미국의 수입영화 산업은 엉망이다. 미국의 해외 배급 시스템은 다 무너졌다. 영화사는 돈이 되지 않으니까 해외 영화를 배급하지 않는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DVD, VOD, 케이블 TV 그리고 ifc 극장같은 곳에서 외국 영화들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영화들은 특징이 있다. 미국에 배급되는 아시아 영화는 두 가지 경우 뿐이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브랜드 가치가 있는 감독의 영화들이거나 한편에는 장르 영화가 있는데 특별히 액션이 인기다. 호러 도한 미국에 팔기가 수월하다. 예를 들어 <김씨표류기>는 훌륭한 영화이지만 미국에 배급될 기회가 없다. 정말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상업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주길 원한다. 블록버스터부터 언더그라운드 영화까지 말이다.
– 판타스틱 영화제 네트워크에 속해 있던데 NYAFF는 장르 영화를 더 좋아하나?
NYAFF는 기본적으로 장르 오리엔테이드 영화제다. 우리는 아시아 영화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싶다. 영화제든 극장이든 소개되는 영화제는 거의 예술영화들이다. 그게 꼭 나쁘진 않지만, 알다시피 대개는 지루한 영화들이다.(^^) 아시아는 그보다 많은 영화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즐거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 영화들은 대개 웰메이드이고 연기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영리한 장르 메이킹을 보여준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장르 영화제이지만 우리가 아니면 미국에 소개될 수 없는 좋은 영화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에 와카마츠 코지의 <유나이티드 레드 아미>는 3시간짜리 영화였는데 그건 장르 영화가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 관객들에게 권해줬다. NYAFF는 장르 영화제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가 있으면 그게 장르 영화든 아니든 상영을 고려한다.
– <작은 연못>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인가?
그렇다. 하다 못해 그 영화는 다른 한국 영화들과도 다르다. 한국영화는 비극적인 역사를 다룰 때 너무 멜로드라마틱하게 가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게 만든 영화들이 성공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화들은 미국 관객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 미국 관객들이 너무 시니컬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다지 효과가 없다. 그런데 <작은 연못>은 신선했다. 일단 멜로드라마가 아니었다. 인물을 소개하는 첫 부분은 너무 아름답다. 그러나 빠르게 비극이 일어나고 그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런 점이 정말 좋았다. 연극 감독의 첫번째 영화였는데 소재를 잘 다뤘다고 생각하고 나에게는 정말 신선했다. 마치 후 샤오시엔의 영화를 보는 거 같았다.
– 선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한국영화를 보나?
꽤 많은 영화를 봤다. 아마 개봉된 한국영화들을 거의 다 봤을 것이다.이제는 한국영화 제작 진행에 대한 레이더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독립영화 정보는 쉽지 않은데 여러 친구들이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부천과 부산 영화제 상영작도 체크하고 때로는 전주 영화제도 살펴본다. (전주? 그쪽은 취향이 많이 다를 텐데?) 전주 같은 경우 흥미로운 영화들이 있다. 전주 덕분에 <우리는 액션배우다>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영화 회사들과 접촉하면서 계속 정보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 CJ, 쇼박스, 엠라인, 화인컷, 인디스토리 등등. 물론 모든 영화를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영화제가 끝나고 나서부터 계속 네트워킹을 하나?
10월에 부산영화제를 갈 것이다. 부천영화제는 가고 싶은데 딱 그 시기에 세르비아에서 어머님이 방문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갈 수가 없다. 베이징 쪽도 살펴볼 것이다? (베이징?) 지금 중국 영화계가 급성장 중이라 뭔가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중국 영화는 여전히 안보 문제가 걸려 있어서 쉽진 않다. 올해 <소피의 선택>같은 상업영화와 <천안문> 다큐멘터리가 섞여 있다. <천안문>은 심각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요소가 있다. 제작 품질도 훌륭하다. 천안문 사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빅스타들이 모여서 모택동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런 게 바로 프로파간다 영화 아니겠나. <천안문>은 그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멋진 영화다.
– 한국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들려준다면? 요즘 뉴욕에선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그라들었다고 들었다.
한국영화는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느리게 다수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한국영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케팅적 측면이다. 예를 들어 홍콩 영화하면 액션이고, 일본 영화도 사무라이나 아이돌 같은 특징이 있다. 그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명확한 컨셉을 주고 있고 그래서 팔기가 더 수월하다.그런데 한국은 좀 다르다. 전체적인 한국영화가 아니라 감독 개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군가는 박찬욱, 누군가는 봉준호, 누군가는 김지운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매그놀리아 영화사는 모든 봉준호의 작품을 모으고 있다. 그건 라이브러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감독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도대체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캐릭터라이징하기가 쉽지 않다. 또다른 이슈는, 미국인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한국에 관해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쟁’을 떠올린다. 그러나 계속 고정관념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젊은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 세대의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 독립 영화, 힙합 컬처, 비디오 아티스트 등 여러 분야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해나간다면, 그들은 한국의 과거에 대해 그렇게 많이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비전은 좀 달라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여러 방식으로 더 글로벌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음 세대 한국 감독들이 무언가를 해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 미장센 단편 영화제 상영작들을 소개하는 건 그런 맥락인가.?
지금 4년째 미장센 상영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원래는 한국 문화원 쪽에서 단편영화제를 틀었으면 좋겠다는 제의가 있었다. 그 중에 미장센 영화제가 장르 쪽이라 우리와 맞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한국 단편 영화들을 많이 봐왔다. 2년 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편영화 심사위원이었고 아시아나 단편영화제에서도 심사를 했다. 수많은 영화들을 보며 그때 깨달은 것은, 애니메이션이 정말 훌륭하다는 점이다. 실사 영화들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단편 감독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그 한편에 담아야 한다는 상박이 너무 강했다. 아마 그 영화가 영화계 일자리를 위한 도구가 되기 때문인 거 같다. 품질은 그리 좋진 않았지만 젊은 세대는 흥미로운 것들을 자유롭게 담아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누가 좋은 감독이 될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 온 <남매의 집>은 정말 수작이다. 긴장감도 있고 잘 조율된 단편영화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너무 길다고 불만이었지만 나는 그 영화가 올해 최고 선정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장편을 끝냈다) 알고 있다. 돌아 가면 복사본을 보내준다고 했다.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한국에서는 왜 장편 애니메이션을 안 만드나? 훌륭한 인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 (질문에 급당황) 음,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이 대개 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니메이터들은 어른이 좀 더 보기 쉬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해외와 협동 작업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 나는 애니메이션이 한국 영화의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수익을 오로지 현장 판매에만 기댄다는 것이다. 그 수익은 그리 크지 않다. 한국에서 DVD 시장이 무너졌지 않나?
– (세컨트 임팩트 급당황) 음…우리는 인터넷 발전에 적응하지 못했다…렌탈 시장에서 바로 무료 다운로딩으로 넘어가 버렸다. 사실 한국에서는 영화를 산다는 게 습관이 되지 못했다. 그전에도 사람들은 오로지 ‘대여’로만 영화를 봤다. 그것도 그리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 영화는 공짜라고 생각한다. (화제 전환) 나는 매년 부천영화제를 갔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 대신 NYAFF가 생겨 다행이다. 그런데 <시>는 이 영화의 취향이 아닌가?
음, 우리는 가져올 수 없었다. 가을에 하는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될 거라고 확신한다.
– <하녀>도 올지 모르겠다. 지인들이 그 영화는 재앙이라고 하더라.
<하녀>는 김기영 외에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영화다!
–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는 무엇인가? 아마도 가장 어려운 질문일 것 같다.
음…(한참 생각) <살인의 추억>을 좋아하고…이명세 감독의 작업을 좋아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도 좋고 <형사>는 과소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인데도 아주 독특했다. 모든 이미지가 음악에 딱 붙어 있었다.

– 모두 <형사>를 비웃곤 하지만 요즘 사극을 보면 <형사>의 영향이 느껴진다.

<형사>는 아마 향후 20년 동안 영감을 준 영화로 언급될 거 같다. 김지운 감독은 이전 영화들이 좋다. 그는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지면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작은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놈놈놈>은 재앙이었다. 스파게티 웨스턴과 만주 웨스턴 양쪽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나쁜 것 중 하나는, 사소하지만, 미술이 과도하게 깨끗했다. 그 미술은 더 더러워야 했다.

– 처음 듣는 의견이다. 흥미롭다

비슷하게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의 수애도 더운 베트남에서 항상 완벽한 메이크업을 유지하고 있어서 신기했다. 사실 오래된 영화들을 더 좋아한다. 요즘 영화보다 훌륭한 영화들이 많다. <서울의 지붕밑> <팔도 사나이>가 좋다.(한국 제목을 찾기 위해 그의 새로 산 ‘드로이드’가 동원됐다) <장국의 아들>과 <무협검풍>은 좋아하는 액션영화들이다. 한국의 수작 액션영화들을 보면 홍콩영화와 일본영화뿐 아니라 제임스 본드같은 서양 문화의 영향이 동시에 느껴져서 흥미롭다. 한국 액션영화만의 특징이 있다면 영웅 캐릭터다. 영웅은 스스로 노력해서 영웅이 됐다. 초라한 과거, 길거리 시절, 그리고 홀로 단련 시절을 거쳐 승자가 된다. 홍콩영화들은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있어 항상 훈련 신이 등장하지만 한국 액션영화는 그렇지 않다. 박중훈이 나오는 <바이오맨>에서 영웅은 터미네이터와 람보의 중간 캐릭터였다. 아마 프로듀서를 애니메이터가 하지 않았나? (나중에 확인하니 김청기) 박중훈은 아마도 그 영화를 싫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바이오맨>을 우리 영화제 심야상영작으로 소개하고 싶다. 아마도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다.

– <전우치>는 봤나?

봤는데 별로였다. 초청을 계속 고려해봤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지 않았다. 액션은 익사이팅하지 않고 지루했다. 처음 부분은 기대할 만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 영화가 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라는 것에도 흥미있었고 정말 기대를 갖고 봤는데..미안하다..선택할 수가 없었다. 아, 지금 생각났는데 <메멘토 모리>도 좋아한다.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던 거 같다. <김씨표류기>도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미장센과 이야기는 굉장히 한국적이지만 현대의 인간과 도시, 문명. 현대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한 훌륭한 코멘터리이다.(나중에 고란은 좋아하는 영화에 <작크를 채워라>와 <아가씨 참으세요>를 추가했다)

– (지난 카탈로그를 들춰보다 딴 이야기) <새드 베케이션>은 좋은 영화였다
오다기리 죠와 아사노 타다노부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너무 바쁜 배우들이라 불가능했다.

* 갑자기 나타난 영국의 장르 영화 잡지 <IMPACT>의 기자. 다음 상영작인 <적벽대전 언컷>을 보러 왔다. 얼떨결에 인사하고 둘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 봤어? 괜찮아?”
“나쁘지 않은데 만화책이 더 훌륭한 거 같아.”
“만화책? 만화가 원작이야?”
“만화 제목이나 원래 영화 제목이 ‘Like the Moon escaping from cloud’으로 훨씬 시적이야.”
“엥? 근데 제목이 왜 ‘Blades of blood’야? 그게 훨씬 멋지구만.”
“나도 모르겠어. 아마도 세일즈 회사에선 그게 더 잘 팔릴 거 같았나봐.” ”
“나는 <라디오 스타> 좋아해. 정말 따뜻하고 기분 좋은 영화였어. 배우들이 이전에 함께한 경험이 많아서 정말 즐겁게 연기를 했고. 안성기 연기는 정말 훌륭했어.”
“이준익은 <님은 먼 곳에>를 제외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었어.”
“그거 ‘blades of blood’에 대한 좋은 뉴스인 거지? 아, 그리고 나 <쌍화점>을 봤는데, 눈은 즐거운데 호모포빅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 연기도 좋고 액션도 익사이팅했거든. 근데 호모호빅이 계속 걸리더라고.”
“우리도 <쌍화점>이 즐거우면서 심각한 시대극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영화제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영화사가 토론토에 가야 한대. 뭐, 행운을 빈다고 했지. 근데 결국 그 영화는 아무데도 가지 못했어.”
“국내에선 잘 됐데?” (동시에 나를 쳐다봄)
(써드 임팩트급 당황) “아, 뭐, 잘 안 됐어. 관객들은 대부분 그 영화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어.”
(고란) “그러니까. 그게 우리 영화잖아! 맥주와 팝콘을 들고 보는 영화라고. 우리 영화라고.”
(임팩트 기자) “그래서 나도 편하게 보려고 했는데. 도서관에서 어린 남자의 정사를 목격한 왕이 게이 사이코 몬스터가 되잖아. 나는 그때 너무 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어.”
(고란, 나를 보며) 한국의 어떤 프로듀서들은 자기 영화의 포지셔닝과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비현실적이랄까. 되지도 않은 영화제를 생각하니까. 영화제도 나름의 과정이 있다. 어떤 영화제에서 소문이 나면 특정한 서킷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개는 기회를 잃는다. 우리는 북미 판타스틱 영화제 네트워크이고, 다른 영화제들이 더 국제적이고 더 아시아 친화적이라고 해도 우리도 유사한 프로그래밍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추천하면 그 영화는 북미 영화제 서킷을 돌 수 있다.

인터뷰 후 다시 일로 돌아간 고란씨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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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아카데미 시상식이 놓친 두 개의 영화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도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새로운 비난은 아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평화 행진을 다룬 <셀마>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되었을 때 이슈가 되었던 해쉬태그 #OscarSoWhite(오스카는 너무 하얗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새삼 확인했을 뿐이다. 음악 역사 영화 중 <아마데우스> 이후 두번째로 많이 벌었다는 흥행작 <스트레이트 아우터 컴턴>이 각본상 후보에만 오르는 바람에 논란은 더 거세졌다.(게다가 후보 작가는 백인이다) 흑인 감독이 연출하고 흑인 배우가 주연한 <크리드>도 실베스터 스탤론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업계 비밀이였다가 2012년 <LA 타임즈>를 통해 폭로된 아카데미 투표인단 구성은 90퍼센트가 백인, 77퍼센트가 남자, 50대 이하 나이대는 14퍼센트다. 한마디로 60대 백인 할아버지가 선호하는 영화들이 그해 미국 영화계를 대변한다는 말이다. 인종적, 성적 다양성을 ‘공공의 선’으로 보는 미국 사회에서 이런 아카데미 위원회를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더이상 사람들은 예년처럼 ‘오스카가 그렇지, 뭐’ 정도로 웃어넘기지 않아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하얀 오스카가 시대에 발 맞추기 위해 주목을 좀더 했어야 할 두 영화가 있다.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 Beasts of No Nation>과 <탠저린 Tangerine>이 그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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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보이후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발표되었을 때, 인종적 형평성과 상관없이 가장 논란이 되었던 배우는 남우조연상 지명에 탈락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알바였다.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은 아프리카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전쟁 병사로 내몰리는 소년의 시선을 쫓아간다. 천진난만했던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군인이 된다. 이드리스 알바는 여기서 아이들의 복수심을 부추겨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사악한 사령관으로 등장한다. 직접적인 잔인한 행동없이 눈빛과 말투만으로 캐릭터의 괴물같은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해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스트레이터 아웃터 컴턴>과 <크리드>의 후보 지명 탈락은 완성도에 있어 이견이 분분하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드리스 알바의 경우 ‘이드리스, 너마저’란 한탄과 함께 인종차별 의혹이 이는 게 당연해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는 영화제가 반길 만한 심각한 인권 이슈를 담고 있다.

아프리카 소년병들의 증언을 모아 완성한 소설이 원작이며 <트루 디텍티브>의 캐리 후쿠나가가 감독을 맡아 아프리카 전쟁의 참상을 매우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촬영까지 겸한 감독은 잔인한 전쟁과 아름다운 자연을 대비시키며 비극을 더 깊이있게 만들고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잔인한 장면을 거르지 않는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괴물이 되어가는 소년과 전쟁의 참상을 견뎌내야 한니 편안하게 감상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이런 심각한 영화가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었다는 점은 더 흥미롭다. 잠깐동안 한정된 극장 개봉을 하고 바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넷플릭스 플랫폼을 이용한 스트리밍 배급은 영화계 구조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만약 아카데미가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얀 오스카’ 비난에 대한 변명거리도 마련하고 넷플릭스를 영화 산업 궤도에 끌어들이는 혁신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 오스카에게 이런 걸 바라는 게 무리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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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세대의 영화 <탠저린>

인종차별만 오스카의 문제가 아니다. 우아한 레즈비언 멜로드라마 <캐롤>은 작품상과 감독상에서 제외되었고 이에 이에 팬들은 #OscarSoMale(오스카는 남성 중심이다)라는 해쉬태그로 비난했다. 그나마 <캐롤>은 루니 마라를 조연으로 강등시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으니 다행이랄까. 작년 한해 젠더 이슈에 있어서 <캐롤> 못지 않게 화제가 되었던 영화가 있다. 바로 100퍼센트 아이폰으로 촬영된 트랜스젠더 코미디 드라마 <탠저린>이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였던 <탠저린>은 인디영화계 거물 배급사 매그놀리아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이전 선댄스 영화제 화제작인 <위플래쉬>가 아카데미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던 걸 돌아보면 <탠저린>에 대한 오스카의 관심은 차갑기 그지 없다.

일면 당연해 보인다. 오스카는 트랜스젠더가 정체성과 싸우는 휴먼 드라마 <대니쉬 걸>은 좋아하지만 트랜스젠더가 하층민으로서 상소리를 해매며 계급적 정체성을 마구 드러내는 영화에는 불편해하는 것같다. 더군다나 영화를 아이폰으로 찍었다고? 영화의 오랜 팬이라면 내용없는 3D 짜집기는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어도 아이폰으로 촬영되어 유튜브에나 업로드되야할 영화를 영화라 불러야할지 헷갈려할 수 있다.

두 트랜스젠더가 바람피운 포주 남자친구를 찾아 로스앤젤레스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모습을 쫓아가면서 <탠저린>은 마치 아이폰으로 도그마 선언이라는 하려는 양 사실주의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다. 이야기의 한축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태우는 이민자 택시 운전사의 고단한 삶이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의 하루는 너무도 드라마틱하고 피곤하고 힘겹다. 역할을 맡은 비전문 배우들은 아이폰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서브컬처를 엿보는 듯한 이국적 재미를 선사하는 이 영화의 교훈은 무엇일까?

서브컬처 영화를 찍을 때는 거친 생동감을 위해 아이폰으로 찍어라? 아마도 영화를 엄청나게 찍고 싶은 사람이 카메라 구할 돈이 없어 영화를 찍을 수 없다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인디 스피릿 어워즈와 아카데미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전날 독립영화 시상식인 ‘인디 스피릿 어워즈’가 개최된다. 지난 십여 년간 인디 스피릿 어워즈는 영화 시상식이 어떻게 영화계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흥미롭게도 <아티스트> <노예 12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버드맨> 등 몇 년 동안 인디 스피릿 어워즈와 아카데미 수상자 명단이 거의 일치했다. 메이저 영화사가 계열사를 만들어 독립영화계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를 잠시 접어둔다면, 이는 독립영화들이 미국 영화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올해 아카데미 후보인 <스포트라이트>나 <룸> 같은 영화들도 독립영화들이다. 또한 인디스피릿어워즈에서 수상한 배우들은 아카데미 배우상 후보에도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이번 인디스피릿어워즈에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알바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소년을 연기한 어린 배우 에이브러험 애타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탠저린>의 마이야 테일러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오픈리 트렌스젠더로서 처음 수상한 배우라는 젠더적인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면을 당했다. 아카데미가 너무 백인 중심이고, 남성 중심이어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SNS에 시상식 시청 보이콧을 선언하며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하고 있다.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보이콧으로 아카데미는 긴급하게 멤버의 다양성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사후 약방문에 가까웠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스카가 그렇지, 뭐’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안스러울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이 할아버지들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은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다면 차라리 인디 스피릿 어워즈 후보 컨닝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같다. 안 그러면 내년부터 OscarSoOutdate(아카데미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는 해시태그가 추가로 따라 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늘 그랬듯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고 한다면 ‘그 고리타분한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게될 지도.

P.S. 올해 오스카 후보작들은 대체로 훌륭합니다. 그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