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과 제이지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내 또래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 음악 취향은 록을 기반으로 힙합이 섞여져 있다. 메탈이 끝물을 타던 90년대 초부터 팝송에 빠져들어서 모던록과 브릿팝의 부흥에 심취하는 한편, 거대한 알앤비와 힙합의 물결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다. 널바나와 보이즈 투 멘을 동시에 사랑하는 차별 없는 마인드의 리스너로 성장. Warren G와 Arrested development같은 애들도 나의 올타임 훼이보릿이란 말이지. 그리고 나서 일렉 폭풍을 맞이하여 잡다구리한 취향을 가지게 됐다. 결론은 장르 상관 없이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 그러므로 섭템버에는 닥치고 지풍화 형님들의 ‘섭텝버’를 들어야 한다는 결론.

각설하고, 유니버설뮤직의 협찬으로 일찌감치 솔드아웃된 에미넴과 제이지의 ‘Home and Home tour’를 보러 양키즈 구장에 도착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으로 공연 보러온 몇 만명의 관중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 운좋게 5불에 우비 사고 좋아라 하다가 곧바로 비가 그치는 바람에 투덜댔으나, 이게 몇 시간 뒤 거대한 삽질의 암시임을 깨닫지 못했다.
엄청난 인파가 웅성대는 검색대를 빠르게 통화하고(양키즈 구장 입장시 경찰 검문은 필수) 안에 들어서니 거대한 규모의 경기장이 펼쳐졌다. 그리고 핫도그, 피자, 샌드위치, 햄버거 등의 상점과 수많은 맥주 가판들. 양키즈의 특별한(그러나 별로 보잘 것 없는) 플라스틱 컵에 따라주는 생맥주가 10불. 그냥 병맥주가 9불이라는 놀라운 바가지 가격. 그러나 이미 취한 혈기왕성한 분들의 고성방가가 간간히 들려 오고.

공연 시작전 우리자리 쪽, 공연 시간인 7시 30분이 되었는데 좌석 채워진 게 이 수준. 규모를 간략 비교하자면, 필드 쪽 좌석수가 체조경기장 만하다고 보면 된다. 양키즈 구장은 10만명을 수용.

요즘 Nothin’ on you로 뜬 B.O.B가 오프닝. 차트 1위하는 신인가수도 열악한 음질로 오프닝을 해야 하는 군기 개념의 힙합 세상. 비오비라고 알파벳으로 읽지 않고 한국스러운 친근한 닉네임이라며 우리끼리 ‘밥군’이라 불렀다. 근데 이 분이 재범이랑 친하다는 같이 간 친구의 코멘트.

에미넴이 나오기까지 내가 에미넴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몰랐다. 마약중독 재활하고 정신차린 뒤 ‘recovery’란 너무 솔직한 제목의 새앨범을 내놓고 첫 투어. 제이지와 함께 하는 이 투어는 에미넴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두 번, 제이지 고향인 뉴욕에서 두 번만 진행됐다. 에미넴은 바로 전날 열렸던 mtv 뮤직 비디오 어워즈에 참석하고 바로 뉴욕으로 날아온 듯. 리아나랑 시상식에서 보여준 공연도 멋졌음.

구찌로 깔맞춤하고 에미넴 맞으러 온 뉴욕 출신 50센트. 불 꺼지면 야광으로 실루엣이 보이게 제작한 옷이였는데 진정 촌스러워서 안타까웠다. 오빠, 명품 좀 밝히시는 듯. 그나저나 에미넴의 무대복은 검은 셔츠와 검은 반바지와 검은 캡이 전부.

내가 공연에서 제일 좋아했던 부분. 닥터 드레의 우정 출연. 옛날보다 살은 빠졌고 근육이 늘은 듯. 에미넴, 50센트와 함께 ‘Nothing but a G thing’을 부르는데 추억의 눈물이 흐를 뻔 했다. 생각보다 어렸을 때 힙합 좀 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에미넴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노래는 신곡인 ‘not afraid’와 앵콜곡이었던 ‘lose yourself’. 그 모든 곡을 영어로 떼랩하는 관중들이 놀라울 뿐이고. 나의 공연인생사상 떼랩은 또 처음이네요. 에미넴의 특징은 절대 웃지 않는다는 것. 정말 심각하게 모든 곡을 래핑. 그리고 인사에는 모두 ‘마더퍼킹’이 수식어. 한국말로 옮기자면, ‘졸라 뉴욕, 졸라 좋냐?’ 뭐, 이런 거. 뒤에서 연주하는 밴드 멤버들이 모두 흑인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에미넴의 1시간 반 공연이 끝나니 11시. 제이지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퀸즈 거주민 신데렐라의 통금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

제이지 공연 시작되기전 카운트다운. 그만 처묵처묵하고 자리에 앉으라는 의미. 관중밀도는 대략 이랬음.

뉴욕커 제이지의 등장. 브룩클린 출신으로 Notorious B.I.G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친분을 쌓았다. 근데 이 오빠도 어렸을 때는 드럭 장사 좀 하셨음. 그러나 이제는 세계적인 갑부.

동행인과 이제 카니예 웨스트만 보면 되겠네, 하고 있었는데 진짜 카니예 웨스트가 등장했다. 레드 수트에 레오파드 셔츠, 그리고 거대한 시계 금목걸이 착용하고 제이지와 랩랩랩. Run this town의 자기 피처링 파트를 열랩. 이분은 요즘 자기 블로그에서 금요일마다 신곡을 하나씩 푸는 떡밥 프로모션 중. 그중 하나인 Monster를 제이지와 함께 했는데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현란한 무대였다. 그런데 카니예, 제이지에 비해 랩이 좀 딸리는 거 같아연. 그래도 Good night을 불러줘서 좋았음. 현재 첫싱글 runaway도 무료 다운로드 가능.(그전날 mtv 시상식 마지막 무대에서 공연한 runaway는 많이 썰렁했다)

제이지와 에미넴이 친한 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둘은 이상한 프로젝트 앨범 ‘Renegade’를 발표했다. 앨범 중심의 공연인 줄 알았는데 결국 두 사람 각자의 콘서트를 하루에 엮어 하는 방식이었다. 에미넴과 제이지가 한 무대에 선 건 같이 한 곡 ‘Renegade’를 부를 때 뿐이었다.

제이지를 환호하는 시그너처 액션. 저렇게 손짓을 하면서 Hova라고 외친다. 뉴욕커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인 듯. 나는 어쩌다 학원에서 배웠음.

디트로이트에서 단촐하게 공연을 끝낸 제이지는 뉴욕 공연의 호스트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엄청난 게스트들을 데려 왔다. 그 중 한 명이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 어찌하여 그가 뉴욕에 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제이지의 소개에 수줍게 등장. 몇 곡 피아노 연주를 하고 홀로 썰렁하게 Viva la vida를 불렀다. 그래도 관중들이 떼창을 해줬으니 외롭지는 않겠고. 크리스 마틴은 이 날만 깜짝 출연했다. 정말 깜짝 놀랐음.

또 하나의 깜짝 게스트 비욘세. 동행인은 “친구 자랑질 하더니 결국 마누라 자랑까지 한다”고 평가. 제이지 음악의 팔할은 남들과 함께 만든 것인가. 이외에 또 다른 차트 1위 신인 래퍼 드레이크도 잠깐 나왔었다. 시간이 갈수록 제이지 공연보다 게스트에 더 관심 집중. ‘Empire state of mind’를 부를 때 혹시 알리시아 키스까지 오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은 객원 보컬이 등장. 어쨌든 현재 최고 뉴욕 찬가인 이 노래는 뉴욕커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놓고. 이 노래 듣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서기 시작하자 뭐라 하며 다시 흥을 돋우는 제이지. 그러나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예전에 친구가 리아나 공연 보러 갔다가 끝이 안 나서 지쳐 돌아왔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진정 흑인 분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노는 것임?
이건 뭐 공연이라고 왔는데 알고 보니 힙합 페스티벌. 5시간 동안 랩만 들었더니 1년 들을 힙합을 다 들은 기분.
제이지나 에미넴이나 록과 똑같은 백밴드 구성을 하고 있어서 어쩔 때는 록음악에 랩이 끼어있는 듯한 느낌도 들더라.

1시 넘은 시각에 지하철은 좀 위험한 지라 기차를 타기 위해 맨하탄으로 내려왔다.(양키즈 구장은 브롱크스 위치) 그러나 다음 기차는 3시 반. 역 안에 자리잡고 주무시는 홈리스들을 가로지르며 결국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뉴욕 지하철은 24시간 운행) 더딘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 도착하니 3시. 한국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더니 전화를 안 받아서 결국 1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기다려 결국 4시에 집에 귀가하는 사태 발생. 머릿속에선 계속 에미넴의 I’m not afraid가 반복되고 있고. 그래 나는 두렵지 않았어요.

201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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