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와 중년팬의 각오

2003년 [Think Tank] 앨범이 블러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데이먼 알반은 기억도 잘 안 나는 프로젝트들을 작업하며 생존 소식을 알렸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진 못했다. 작년에 나온 솔로 앨범도 별로였다.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거기에 아기자기한 일렉트로닉 비트와 노이즈를 얹는 그의 방법론은 좋게 말해 ‘고릴라즈’의 B트랙 모음 정도로 들렸다. 그러니 블러가 재결합을 해서 새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으나 싱글 ‘There are too many of us’를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13]과 [Think Thank] 시절 블러 식의 멜랑콜리 팝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곡이었다. 냉소와 풍자로 무장한 쿨하디 쿨한 음악을 들려줬던 청년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팝 멜로디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데 집중하다가 휴지기를 맞이했다. 돌아온 음악은 이전 ‘블러’를 모두 섞은 사운드에 회한에 정서를 더하고 지금의 테크놀로지로 마무리한 듯한 사운드였다.블러가 블러인 것이 가장 힙한다는데 모두 동의라도 한 걸까. [Magic Whip]은 힙한 중년 밴드가 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물론 그 포지셔닝은 스스로가 아니라 청자들이 판단할 일이겠지만.

블러가 선택한(혹은 강요당한) 첫 프로모션은 5월 1일 앨범 발매와 함께 뉴욕 브룩클린의 작지만 유명한 공연장 ‘뮤직홀 오브 윌리엄스버그’에서 무료 공연을 갖는 것이었다. 티켓마스터 사이트에서 선착순으로 배부되는 티켓을 건지기 위해 예매 개시 시간이 되자마자 부지런히 마우스를 클릭하며 티켓 한 장을 얻는데 성공했다.5분도 안 되어 티켓은 모두 사라졌다. 블러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이렇게 예매에 매달릴 줄이야!

공연장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티켓을 구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남는 티켓 없냐?”고 물었다. 돈을 내고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딜을 제시하건 티켓을 넘기는 사람은 없었다. 팬덤 강한 유명한 인디밴드가 수시로 공연하는 곳임에도 이 정도로 줄이 늘어선 게 흔치 않은 풍경인가 보다. 5분 간격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누구 공연이냐고 묻는다. 신기한 건 ‘블러’라고 말하면 대부분 누군지 안다는 것.

“이거 무슨 밴드 줄인가요?”

“블러요.”

“응? 트리뷰트에요?”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빵 터졌다. 옛날 밴드의 해체 소식만 기억하고 있던 행인인가. 아니오! 우리는 오리지널 블러를 보러 왔소!

5시 입장이란 공지와 상관없이 공연장에 들어가니 시간은 6시가 훌쩍 넘었다. 무대 위에서 초어린 오프닝 밴드 ‘Honduros’가 발랄한 펑크 뮤직을 연주 중. 키 큰 남자들이 많아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던 중에 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는데 뉴욕 살아요.”

“블러 공연 본지 얼마나 됐어요?”

“음, 그게 90년대였는데. 한국에서요.”

“……(잠시 침묵) 아. 저는 고릴라즈를 좋아했어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했었죠. 블러는 본적이 없어요. 고릴라즈 좋아해요?”

“그럼요.좋아했죠. 작년에 데이먼 알반이 솔로 앨범 내고 거버너스 볼에서 공연했는데 그때 고릴라즈 노래 몇 개 불렀어요.”

“아, 작년에 데이먼 알반이 앨범 냈어요? 몰랐네요.”

돌아서서 잠깐 연도를 따져봤다. 고릴라즈를 2000년대에 봤다는 사람에게 무려 블러를 90년대에 봤다고 했으니 우리의 나이 차는 열살 이상? 우악. 말 실수를 했어. 연식을 들켰다! 얘야, 미안하다. 내가 좀 동안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90년대에 블러를 좋아했을 법한 비슷한 나이 대의 분들도 보였지만, 아주 놀랍게도 꼬꼬마 소년들, 그러니까 소녀가 아닌 소년들이 꽤 많이 눈이 들어왔다. 고릴라즈를 좋아했다는 내 앞 청년은 그나마 나이가 든 축에 속했다. 멤버들이 비교적 잘 보이는 앞쪽으로 나아가니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분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뭐지? 블러가 힙한가? 공짜 공연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어쩌자고 내가 이렇게 앞쪽 좁은 자리에 서 있는 거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도 자랑스러운 블러 팬이란 말이다.

마침내 블러 멤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잃어버렸던 가족과 20년만에 상봉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게 가슴이 벅차 올랐다. 멤버들에 대한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웰컴 백”이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데이먼 알반은 멋쩍어하는 동시에 그 환호를 즐기며 계속 더 하라는 식으로 양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름 유머러스한 인사를 건넸다.

“굿 이브닝. 앨범을 안 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데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야!”

‘블러’로 재결합 후 첫 앨범, 그리고 발매날 첫 공연. [Magic Whip] 앨범 첫 곡 ‘Lonesome Plant’의 발랄한 전주로 공연이 시작됐다. 명백한 블러식 팝/록 사운드, 그리고 변함없는 데이먼 알반의 목소리. 그레이엄, 알렉스, 데이브 모두 나이는 좀 들었지만 예전 얼굴이 남아있다. 나이에도 서슴지 않고 무대 위에서 깡총깡총 뛰는 데이먼을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에 몰두했다. 드러머 데이브는 ‘I broadcast’ 후주에서 드럼을 두들겨 부술 듯한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레이엄은 앨범보다 더 과장된 노이즈를 만들어내는데 열심이었다. 격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던 그는 땀에 젖어 안경을 벗어버렸다. 오로지 알렉스만 차분한 모습으로 묵묵히 베이스를 연주했다. 데이먼은 저렇게 점핑하다 탈나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왜 음악에 열중을 못하고 데이먼의 체력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공연을 볼 때마다 백퍼센트 몰입력을 발휘했던 내가 흔들리고 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팬이라면 이런 반응이 정상인 걸까?

시시때때로 생수병을 흔들며 관중에게 물을 뿌리는 데이먼의 팬서비스(?)는 변함 없었다. 앞쪽에 있던 관계로 계속 물세례를 맞았다. 안경에 묻은 물을 닦아내며 투덜댔지만, 20여년 전 정동에서 데이먼이 똑 같이 물을 뿌려댔을 땐 그 물이 성수라도 된 양 앞다투어 맞으려 했던 나였다. ‘데이먼이 뿌려준 물을 맞았다’고 일기장에도 썼던 기억이 난다. 공연하는 이의 퍼포먼스 일거수 일투족이 중요했던 시간이었다.

옆에 서있던 99퍼센트 너드가 분명한 청년은 안경을 벗더니 눈물을 훔쳤다. 나도 너무 반가운 마음에 잠시 울컥했지만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이상하다. 왜 공연장에서 감정이 절제가 되지? 나답지 않다. 2015년 블러 공연을 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1996년 정동 극장의 나를 떠올리며 잠시 혼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때 나와 지금 내가 같은 사람이 맞나?

1997년 어느 날 학교 앞을 지나다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블러 내한 공연? 진짜야?!” 한물 간 밴드가 내한공연을 드문드문 오는 공연 후진국에 살면서 뮤직비디오 카페에서 죽때리며 영상으로만 글래스톤베리와 롤라팔루자를 경험하고 있던 20대 청춘들에겐 엄청나게 충격적인 뉴스였다. 동시대 양인들이 함께 즐기고 있는 동시대 청춘 밴드가 온다니, 이게 농담인가 아닌가. 벽에 몇 개씩 붙어있는 공연 홍보 포스터를 소장하겠다고 조심스레 떼어내며(죄송합니다) 빚을 내서라도 공연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돈 없는 20대가 감당하기엔 무리인 가격이었으나(아마 5~6만원 정도였던 듯) 밥 몇 번 건너뛰고 사고 싶은 옷을 안 사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예매를 끝낸 나와 친구의 그 다음 계획은 노래 가사를 모두 출력해 관사 하나까지 외우는 일이었다. 이런 국제적으로 핫한 밴드를 맞이해본 적이 없는 두 팬은 열정적인 팬심을 표현하기 위해 대한민국 학생들의 필살기인 암기력을 기댔다. 셋리스트가 뭔지도 몰랐고 그런 걸 알려주는 사이트도 없었다.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되도록 많이 불러주길 바랄 뿐이었다.

공연 당일에도 뭐를 해야 할지 몰라 조금 일찍 정동체육관으로 갔다. 덕수궁 옆 정동길에 위치한 작은 체육관이었다. 이미 BLUR 로고 티셔츠를 맞춰 입은 분들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팬클럽 내지 동호회에 전혀 관심 없었던 우리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승용차가 공연장 입구를 가로지를 때 한 언니가 “블러다!”라며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무대 뒤편으로 거대한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블러 공연을 보기 전에 국민의례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말없이 무대로 올라온 블러는 정말 한마디도 안하며 들고 있던 생수만 관중에게 뿌려댔다.초반부터 미쳐버린 우리 둘은 데이먼 알반이 뿌리는 물을 맞으며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중반쯤 지났을까.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누군가 사람들에 밀리는 척하며 자신을 가슴을 노골적으로 만졌다고 했다. 성추행의 충격에 빠진 친구는 공연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기다렸던 블러 공연인데 누가 이렇게 망쳐버린 걸까? 성추행범을 찾아서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자고 했다. 친구는 얼굴을 못 봤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흥이 깨진 우리는 떠나기도 아쉬워서 뒷편으로 멀찍이 물러나 남은 공연을 감상했다.

그 성추행범은 자신이 1997년 블러 공연을 봤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까? 네 덕분의 내 친구에게 이 블러 공연은 기억하기 싫은 날이 되었다.블러의 이름에 먹칠을 한, 성추행 팬은 누구인가.블러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 그늘을 만들어준 그 새끼는 누구였을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2015년으로 돌아왔다. 청춘의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는 옆에 없고 나는 홀로 블러를 마주하고 있다. 반가움과 흥분, 아련함이 혼재된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무대를 바라본다. 반가움이 주된 감정이긴 하다. 정동을 거점으로 블러 노래들과 동거동락했던 기억의 무게에 지지 앉으려고 신곡들에 집중한다. 눈물을 참고 있는 감정에 가깝다.그나마 감정을 추스릴 수 있던 이유는 지금 그들이 연주하는 곡들이 추억의 곡들이 아니라 몇 번밖에 못 들어본 신곡들이란 점이다. 앨범으로만 들었을 때는 젊은 블러 시절보다 생동감은 부족했고, 가사는 과도하게 모호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늙은 티가 나는 앨범이었는데 라이브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카메라가 녹화를 하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랜만에 블러로 무대에 선 그들이 ‘블러식 라이브’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믿고 싶다. 에너제틱하면서도 노련한 연주. 각각의 응집력이 돋보이는 곡들.

파편화된 이미지를 이어 붙인 듯한 가사의 ‘Pyongyang’ 정도가 갑자기 착 가라앉는 분위기를 유도해 가장 튀었다. 도시 ‘평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곡. ‘Ong Ong’은 즉석 싱어롱을 유도하기 위해 동요같이 만든 곡임이 티가 나서 조금 민망하긴 했으나 결국은 따라 부르고 말았다.신기한 반응 중 하나는, 뒤에 있던 또 다른 어린 소년이 곡이 나올 때마다 곡명을 친구에게 말해 줬다는 것. 블러는 “아직 불편해서 부르기 힘들다”는 ‘Ice cream song’ 등을 제외하고 신곡을 거의 들려준 후 무대를 떠났다. 떠난 그들에게 앵콜을 요청하는 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뉴욕 최고로 수줍음 많은 음덕들만 모였나. 이 정도 목소리의 앵콜 요청이라니 블러에게 미안하지 않은가!(남을 대신해서 창피해하고 미안해하는 한국병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어쨌든 녹화용 각본이 있어서인지 블러는 다시 등장했다. 데이먼은 너무 행복해하며 각 멤버들을 하나씩 껴안았다. 두근거리는 관중들에게 들리는 익숙한 전주. Beetlebum이다. 조용했던 사람들은 아는 노래가 나오자 하나둘 미치기 시작. 신곡명을 다 외웠던 뒤쪽 청년은 이 틈을 놓칠세라 “이건 비틀범인데 블러 명곡 중에 하나”라며 친구를 위한 주석을 달았다. ‘Trouble in the message centre’에 이어 대미를 장식한 ‘Song 2’까지. 간만에 공연장에서 애들이 넋을 잃고 발광하는 걸 목격했다. 부딪히는 아이들에게 질세라 나도 부딪혀가며 가사를 외치면서 다시 한번 울 것 같은 기분이 됐다.

‘Song 2’를 들으며 뮤직바에서나 클럽에서나 미쳐 날뛰던 때가 많았건만, 지금 이순간은 이상하게 완전 몰입이 힘겨웠다. 내가 ‘Song 2’를 좋아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 당황스러웠다. 동시대 밴드 공연을 적절한 시점에 본 뒤 나이 들어 다시 보게 되면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건가? 음악은 안 늙었는데 나는 늙은 기분. 음악과 20대의 나는 어느 시점에 같이 뭉쳐져 있는데, 그걸 내가 되돌아보고 있는 기분. 시간의 습격에 갑자기 막 슬퍼지고 울고 싶고 그런데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판단이 안 되는 혼란스러운 기분.

공연이 끝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이런 대화가 들려왔다.

“너한테 예매전쟁 치르게 해서 미안했어.”

“아냐. 네가 그러라고 해서 너무 행복한 걸.이 공연은 정말 엄청났어.”

풋. 아니야. 애들아. 이들의 정말 엄청난 공연은 이미 90년대에 벌어졌어.블러는 이런 코딱지만한 공연장이 아니라 거대한 글래스톤베리에서 수만명을 넉아웃시켰던 밴드라고. 어디서 감히 에픽이라고 떠드는 거야. 팬심인지 꼰대심인지 모를 이런 나의 반응이란.

오랜만에 블러로 공연으로 끝까지 달리고 싶어하는 데이먼 알반을 보며, 그리고 그 요구에 맞춰주지 못하는 어정쩡한 관객 반응을 보며, 인생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적절한 공연을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과 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 중요한 순간을 망쳤던 성추행범을 다시 한 번 저주하며.

또한 한때 에픽이었던 중년 밴드도 새 시대를 맞이해 정말 열심히 해야 살아남는다는 교훈.

그러므로 나 따위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 디너쇼는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싱어롱을 하겠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블러의 뉴욕 공식 투어가 잡힌다면 96년에 못 따라 부른 노래들을 다 불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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